우리 옛 그림

김수철 1 - 겨울 산수

從心所欲 2021. 12. 4. 13:30

「예림갑을록(藝林甲乙綠)」은 추사 김정희가 중인 출신의 서화가들을 지도하고 품평했던 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이런 자리가 마련된 배경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일반적으로는 추사가 제자들을 지도하는 자리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참석자 중에는 익히 추사의 제자로 알려진 소치(小痴) 허련(許鍊)과 고람(古藍) 전기(田琦) 같은 인물도 있으나 이때 말고는 딱히 추사와 연결할만한 구석이 없는 인물들도 다수 있다.

이 모임이 있었던 시기에 대해서는 추사가 제주도로 유배가기 전인 1839년이란 것이 학계의 통설이었으나, 2003년에 원본이 발견됨에 따라 추사가 제주도에서 돌아온 후인 1849년으로 밝혀졌다. 당시 김정희의 나이는 64세였다.

 

1849년 여름 추사는 약재상을 운영하던 전기의 서재인 이초당(二艸堂)에서 각각 8명에게 글씨와 그림을 쓰고 그리게 하고는 그들의 작품을 품평했다. 6월 20일부터 7월 14일 사이에 전기를 포함한 8인이 4회에 걸쳐 글씨 지도를 받고, 허련을 포함한 8인이 3회에 걸쳐 따로 그림 지도를 받았다. 그러니까 추사는 총 7번에 걸쳐 이들을 지도한 것이다. 다만 전기와 유재소(劉在韶)는 양쪽 모두에 참석했기 때문에 실제 참여인원은 14인이다. 유재소는 전기와 호형호제하던 사이고, 이초당(二艸堂)을 서로 공동 서재로 쓸 만큼 가까운 사이였다. 이런 사실들로 미루어 이 자리는 전기가 주선해서 마련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추사는 참석자들의 작품에 대하여 일일이 평을 해줬고 전기가 이를 적어 기록한 것이 「예림갑을록(藝林甲乙綠)」이다. 그림 지도를 받았던 화가들 중에는 북산(北山) 김수철(金秀喆, ? ~ 1862년 이후)도 있었다. 추사는 김수철의 그림에 대하여 "구도가 대단히 익숙하고 붓놀림에 막힘이 없다. 다만 채색이 세밀하지 못하고 인물 표현에서 속기(俗氣)를 면치 못했다"는 평을 했고, 또 다른 그림에 대해서는 “극진함이 있어 기뻐할만한 구석이 있다.”고 했다.

삼성미술관리움에는 이때 그림 지도를 받은 8인의 그림에 우봉 조희룡이 화제시를 쓴 그림들로 만든 <팔곡병풍>이 있다. 

 

[<팔곡병풍> 중 김수철 작품, 일명 매우행인도(梅雨行人圖), 견본담채, 72.5 x 34.0cm, 삼성미술관리움]

 

이 <팔곡병풍>의 그림들은 당시 추사가 화가들에게 내줬던 ‘추산심처(秋山深處)’와 ‘추수계정(秋水溪亭)’이라는 화제(畵題)를 따라 8인의 화가들이 그렸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각 그림의 병풍 위쪽에는 작가에 대한 간략한 신상과 함께 추사가 평한 내용이 적혀있다. 위창 오세창이 뒤에 그림들을 모아 병풍을 만들면서 적은 것으로 보인다.

 

김수철에 대해서는 자와 호를 소개하고 이어 김정희의 평을 적었는데, ‘有極可喜處 不作近日一種率易之法’이라는 글귀가 보인다. ‘극진함이 있어 기뻐할만한 구석이 있다. 근일 일종의 솔이지법(率易之法) 같은 것은 따라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될 듯하다.

솔이지법(率易之法)은 흔히 ‘간솔하고 담백한 화풍’이라고 긍정적으로 해설되는데, 추사가 말하는 솔이지법(率易之法)은 원나라 말의 화가 예찬(倪瓚)의 특징인 ‘거칠고 간략함[荒寒簡率]’을 억지로 꾸며내는 것을 가리킨다. 당시에 문인화라는 명목으로 예찬(倪瓚)의 그림을 흉내 내어 대충 붓을 휘두르고 마는 화풍을 질타하는 말이다.

추사도 예찬 풍의 <세한도>를 그렸다. 그러나 추사는 그림을 서(書)의 연장으로 보았다. 글씨든 그림이든 ‘문자향 서권기’가 있어야 한다고 늘 강조했던 인물이다. 따라서 추사가 말하는 ‘솔이지법’은 단순히 간결만을 일삼는 필법을 따르다 습기(習氣)에 빠지지 말고, 문인화의 본뜻을 깨달으라는 경계의 말로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 전하는 김수철의 그림들에 대하여는 ‘필치는 거칠지만 간략하며, 대상 묘사를 과감하게 생략하기도 하고 점과 선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거나 ‘단순하게 윤곽을 잡고 맑은 담채(淡菜)로 색을 가미하며 담백하게 그리는 특징’ 같은 평들이 따라 다닌다.

국립박물관의 <김수철필 설루상매도(金秀哲筆雪樓賞梅圖)>에서도 그의 거칠지만 간략한 필치를 볼 수 있다.

 

[<김수철필 설루상매도(金秀哲筆雪樓賞梅圖)>, 지본담채, 197 x 48.7cm, 국립중앙박물관]

 

'눈 내린 누각에서 매화를 감상한다'는 화제부터 운치가 넘친다. 오른쪽은 어딘가 멀리서 흘러내려오는 강물이 여백처럼 처리되어있고 왼쪽에는 매화꽃이 만발한 언덕이 자리 잡았다. 언덕의 누각에는 붉은 웃옷을 입은 고사가 매화를 감상하고 있다. 언덕 위에 사방으로 뻗친 매화나무의 가지를 그린 선들이 말 그대로 거칠면서도 간략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수채화처럼 느껴지는 대담한 생략과 담백한 설채 등 새로운 감각의 그림’이라고 설명을 달았다. 김수철의 매화가 있는 풍경을 그린 또 다른 그림인 <겨울 산수> 또는 <동경산수도(冬景山水圖) 를 보면 그런 설명이 더욱 공감이 간다.

 

[김수철 <겨울 산수> 또는 <동경산수도(冬景山水圖)> , 119 x 46cm,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명과는 달리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나 <계산적적도(溪山寂寂圖)>로 소개되기도 한다. ‘계산적적’이란 명칭은 그림에 쓰인 제시에서 따온 것이다.

 

溪山寂寂無人間 好訪林逋處士家

계곡과 산에는 사람들이 없어 임포처사의 집을 찾아가기 좋구나.

 

임포처사는 중국 항주(杭州)의 서호(西湖) 부근 고산(孤山)에 집을 짓고 매화를 처로 삼고 학을 자식삼아 은거했던 임포(林逋)를 가리킨다.

 

그림은 산과 바위를 연한 먹빛으로 칠하고 태점(苔點)을 찍어 장식적 효과를 높였다. 매화꽃은 위 <설루상매도(金秀哲筆雪樓賞梅圖)>와 같이 호분(胡粉)을 찍어 그렸지만 흰색이 날아가 잘 눈에 띄지는 않는다. 전체적으로 은은한 먹빛 속에 임포가 머물고 있는 서옥(書屋)의 옅은 분홍색과 임포의 붉은 옷, 다리를 건너오는 인물의 푸른색 옷이 산뜻한 대비를 이루게 했다. 수채화처럼 느껴지는 맑고 담백한 색채가 현대인들에게도 친근감을 줄만한 느낌이다.

 

[김수철 <겨울 산수> 부분]

 

이 그림들의 필법이 거칠다거나 간결하다는 설명이 선뜻 이해가 안 되는 경우라면 아래의 중국 그림을 보면 된다. 같은 소재에 거의 같은 구도를 가진 그림이지만 공교한 필법으로 그려진 소위 북종화이다.

 

[필자미상 <매처학자(梅妻鶴子)>, 중국]

 

임포를 주제로 한 그림은 ‘매화서옥(梅花書屋)’ 말고도 ‘화정간매(和靖看梅)’나 ‘고산방학(孤山放鶴)’, '매처학자(梅妻鶴子)'와 같은 다양한 화제로 그려졌다. 추사의 그림 지도에 참석했던 화가들도 매화가 있는 풍경을 그린 그림들을 남겼다.

 

[전기 <매화초옥도(梅花草屋圖)>, 지본담채, 32.4  x 36.1cm, 국립중앙박물관]

 

[소치 허련(1809 ~ 1892) <매화서옥도>, 19세기, 종이에 엷은 색, 21.0 x 28.0cm, 개인소장]

 

[이한철 <매화꽃이 핀 서옥> 또는 <매화서옥> 6폭 병풍, 지본담채, 국립중앙박물관]

 

여항화가들이 매화서옥도를 즐겨 화재(畵材)로 삼았던 이유에 대하여는 여항인들이 지향하였던 사대부의 삶을 대변하는 표현이라는 주장도 있다.

 

 

참고 및 인용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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