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윤두서의 아들 윤덕희 1

從心所欲 2021. 11. 22. 16:29

[<윤두서자화상(尹斗緖自畵像)>, 지본담채, 38.5 x 20.5㎝, 국보 제240호, 고산유물전시관]

 

옛 그림에 관심이 있다면 혹시 그림의 작가가 누구고 그림 속의 인물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이 그림을 적어도 한번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숙종 때의 문인화가였던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 1668 ~ 1715)의 자화상이다. 그림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매섭고 강렬한 눈매에 섬뜩한 기분이 들어 얼른 시선을 돌리고 싶게 만드는 그림 속 주인공은 성리학은 물론 천문, 지리에서 의학, 음악, 공장(工匠)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박학다식했던 인물이다. 그림이 기괴한 형태로 남아있는 것은 이 그림이 미완성작인데다 유탄(柳炭)으로 그린 부분이 세월이 지나면서 지워진 때문이다.

 

윤두서는 해남(海南) 윤씨 집안의 종손으로 윤선도(尹善道)의 증손자이자 정약용의 외증조부이기도 하다. 해남 윤씨는 윤선도 이래 전통적인 남인 집안으로 정착되었기 때문에 격화된 당쟁 속에서 남인이 어려운 입장에 몰리자 윤두서는 벼슬에 대한 뜻을 접고 평생을 학문과 시서화로 보냈다. 그러면서 자화상을 비롯한 여러 그림을 남기면서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화가를 일컫는 삼재(三齋)의 하나로 이름이 오르내리게 되었다.

 

낙서(駱西) 윤덕희(尹德熙, 1685 ~ 1766)는 그런 윤두서의 맏아들이다. 산수화, 도석인물화, 풍속화, 동물화를 두루 그렸고, 당대에 도석인물화와 말 그림을 잘 그리기로 유명했다고 전해진다. 아버지 윤두서의 영향을 받아 남종화풍을 주로 구사하면서도 전통화풍과 중국의 여러 화풍을 두루 섭렵했다는 평가도 있다.

 

당대에 이미 화명(畵名)을 얻어, 60세 넘은 나이에 숙종 어진을 다시 그리는 삼성진전(三聖眞殿) 모사중수도감(摸寫重修都監)에 관아재(觀我齋) 조영석과 함께 화사(畵事)를 감독하는 감동(監董)의 직책을 맡은 공로로 잠시 관직에 나갔던 일을 제외하고는 평생 서울과 해남을 오가며 아버지 윤두서처럼 학문과 시서화에 전념했다. 그는 성리학뿐만 아니라 불교, 도가의 신선사상과 양생술(養生術), 의약, 음악 등의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졌었으며, 그가 읽었던 127종의 목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중국소설도 가까이 했다.

그래서인지 윤덕희는 18세기 전반기 화가 중 가장 많은 도석인물화를 남기기도 했다. 현재 전하는 윤덕희의 그림들에는 윤덕희의 또 다른 호인 연옹(蓮翁)을 사용한 경우가 많다.

 

[윤덕희 《연옹화첩》중 <군선경수도(群仙慶壽圖)>, 견본수묵, 29.7 x 22.1cm, 국립중앙박물관]

 

그림은 팔선도에 자주 등장하는 종리권(鍾離權), 여동빈(呂洞賓), 이철괴(李鐵拐), 조국구(曹國舅)와 함께 동방삭(東方朔), 유자선(柳子仙)이 수파(水波)를 타고 수노인(壽老人)을 찾아가 수노인을 첨앙(瞻仰)하는 그림이다. 이철괴는 호리병과 지팡이를 든 모습이고, 조국구는 딱따기를 치고, 종리권은 파초선을 들고 있고, 등에 검을 찬 여동빈은 두 손을 모아 읍을 하고 있다. 두 손으로 복숭아를 받쳐 올리는 인물이 동방삭, 그리고 맨 뒤편에 요괴 형상의 인물은 버드나무의 정령이라는 유자선이다.

 

절벽 바위 위에 앉아있는 수노인(壽老人)은 이름에서도 나타나듯 인간의 행복과 장수를 주관하는 신이다. 수노인은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남극노인성은 고대 중국에서 하늘의 별들을 28개 구획으로 구분한 별자리인 ‘28수(二十八宿)’ 중 동쪽의 한 별자리인 수성(壽星)을 가리키는데, 중국에서는 수성이 하늘에서 빛날 때는 천하가 태평하지만, 수성이 보이지 않으면 나라에 전란(戰亂)이 올 조짐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래서 수노인은 천하태평을 축복하는 수성(壽星)의 화신이기도 하다. 수노인의 외모적 특징은 기다란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민머리와 치렁치렁한 옷차림이다. 수노인과 함께 등장하는 수사슴은 사람이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영지를 산 속에서 찾아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윤덕희 <남극노인도(南極老人圖)>, 모시에 먹, 160.2 x 69.4cm, 간송미술관]

 

간송미술관의 <남극노인도(南極老人圖)>에는 ‘1739년 음력 11월에 낙서가 산포에서 그려 친구 최영숙의 회갑을 축하하는 뜻으로 바친다[己未復月 駱西散逋寫 奉侶 寓意崔兄永叔回甲]’는 간기(刊記)가 있어 이 그림이 환갑 축하용으로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수노인이 등장하는 그림은 생일을 맞은 이의 축수(祝壽)용이나 신년 세화(歲畵)로 그려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윤덕희필 진무대제상(尹德熙筆眞武大帝像)>, 지본수묵, 77 x 29.7cm, 국립중앙박물관]

 

진무(眞武)는 도교(道敎)에서 북방(北方)신으로 흔히 진무대제(眞武大帝)로 불린다. 정락국왕(淨樂國王)의 태자로, 태어날 때부터 신령스러웠으며, 성장하면서부터는 사마(邪魔)를 제거하는 데 뜻을 두었다고 한다. 자허현군(紫虛玄君)을 만나 도(道)의 비결을 전수받고 동해(東海)를 건너 천신(天神)을 만나서는 보검(寶劍)을 받았다. 이후 호북(湖北) 무당산(武當山)에 들어가 42년 동안 수련을 하여 마침내 원하는 경지에 들어섰다고 한다.

말을 잘 그렸다는 윤덕희의 솜씨를 볼 수 있는 기마인물도들이 있다.

 

[<윤덕희필 선객도(尹德熙筆仙客圖)>, 지본수묵, 138.5 x 95.5cm, 국립중앙박물관]

 

선객(仙客)은 신선(神仙)을 뜻하는 말이지만, 그림 속의 신선이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윤덕희 <마상인물도(馬上人物圖)>, 지본채색, 84.5 x 70.0cm,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명은 <마상인물도(馬上人物圖)>이지만 ‘마상부인도(馬上婦人圖)’로 더 많이 알려진 그림이다. 호복(胡服) 차림의 여인이 푸른 말을 타고 있다. 화면 왼쪽 상단에 병진년(1736) 여름 백련포옹(白蓮逋翁)이 둘째 아들 용(愹)에게 그려주다‘라고 간기를 적었다. ’백련포옹(白蓮逋翁)‘은 윤덕희의 해남(海南) 거처인 백련동(白蓮洞)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그의 간기에 종종 등장하는 ’도망갈 포(逋)‘자에 대해서는 해석이 난감하다.

 

윤덕희는 윤두서가 처음 문을 열었던 여인풍속도의 맥도 이어갔다.

 

[윤덕희 &lt;여인독서도&gt;, 견본담채, 20 x 14.3cm, 서울대학교박물관]

 

[윤덕희 <오누이>, 견본담채, 20 x 14.3cm, 서울대학교박물관]

 

 

 

참고 및 인용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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