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는 연담(蓮潭) 김명국(金明國)의 그림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달마도>일만큼, 김명국은 도교의 신선이나 불교의 고승(高僧)을 소재로 하는 그림인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畵)에 뛰어났던 조선 중기의 도화서 화원이었다. 왜국에서 선승화(禪僧畫)가 유행하던 시기인 1636년, 통신사를 따라 왜국에 갔던 김명국은 왜인들이 밤낮으로 모여들어 그림을 청하는 바람에 그림 그리는 일이 너무 힘들어 울려고까지 했다는 글이 있을 정도로 김명국의 그림은 왜국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1643년에 김명국이 또 다시 통신사행에 동행하게 된 것도 왜국의 요청 때문이었다 한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달마도>와 <달마절로도강도(達磨折蘆渡江圖)>는 그때 김명국이 왜인들에게 그려주었던 그림들이다.
술을 좋아했던 김명국은 연담(蓮潭)외에도 취옹(醉翁)이라는 호를 같이 썼는데, <달마도>에는 연담으로, <달마절로도강도>에는 취옹이라 적었다. 두 그림은 모두 꼼꼼히 그린 것이 아니라 적은 수의 필선으로 간략하게 그려냈다는 특징이 있다. 붓을 잡고 거침없이 빠르게 그려냈음이 한눈에 느껴진다. 이런 그의 필법을 전문가들은 거칠면서도 호방했다고 평한다.
이런 필법의 그림으로는 간송미술관 소장의 <수로예구도(壽老曳龜圖)>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힘차고 굳세며 대담한 필법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들도 전한다.
선객(仙客)은 신선을 가리킨다. 두 신선이 폭포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 그림은 앞에 본 달마도들의 필법과는 달리 세심하게 신경을 써서 그렸음을 느낄 수 있다. 비단에다 채색까지 하고 크기도 꽤 커서 도화서 화원들이 신년을 송축하는 세화(歲畵)로 그려 궁중이나 재상에게 진상했던 그림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도화서 화원으로서의 공교한 그림 실력을 발휘한 그림으로 보인다.
이것과 거의 같은 화풍으로 그려진 또 다른 그림이 있다.
다 같은 신선그림인데 앞의 점잖고 고상한 분위기와는 딴판이다. 바둑판은 엎어져있고 두 신선은 엉겨 붙어 있다. 신선놀음이라는 바둑을 두다가 싸움이 일어난 모양이다. 귓불을 잡아당기며 어깨를 깨물고 있는 신선의 노기 가득한 눈매와 그것을 벗어나려고 애쓰는 또 다른 신선의 모습이 너무도 세속적이어서 웃음을 자아내지만, 이 난리법석 속에서 싸움에는 관심 없이 쏟아진 바둑알을 묵묵히 주워 담고 있는 선동의 모습이 더 해학적이다.
「채근담(菜根譚)」에 나오는 구절이 생각나는 광경이다.
奕棋淸戱也 바둑은 고상한 놀이지만
且動戰爭之心 또한 승패를 다투는 마음을 일으키니
可見 喜事 不如省事之爲適 이로써 볼 때 즐거운 일이란 일을 덜어 유유자적한 것만 못하다.
도교 경전인 『운급칠첨(雲笈七籤)』에 따르면, 신선에게도 등급이 있다고 한다. 위에서부터 상선(上仙), 고선(高仙), 대선(大仙), 현선(玄仙), 천선(天仙), 진선(眞仙), 신선(神仙), 영선(靈仙), 지선(至仙)의 순으로 등급이 있다는 것인데, 싸우는 신선들은 어느 급인지 궁금하다.
이 두 점의 그림은 김명국이 그림에 쏟은 시간과 정성의 정도가 <달마도>와 <선객도>의 중간 정도로 느껴진다. 색은 옷 바탕과 옷깃에만 썼다. 산수인물도라고 했지만 도석인물화 같은 느낌도 난다. 나귀를 타고 우산까지 쓴 주인 뒤에서 비를 맞으며 따르는 동자의 일그러진 표정이 재미있다.
이와 채색 방법은 비슷하지만 조금 더 날렵하고 세련된 느낌을 주는 <전 김명국필 신선도(金明國筆神仙圖)>가 있다.
그림 속 인물은 태호(太湖)에 은거하면서 어부와 나무꾼 생활을 했다는 장지화(張志和)로 추정된다. 당나라 때의 실존 인물이지만 신선이 된 것으로 여겨 신선도에서는 대개 물 위에 앉아 있는 술 취한 선비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춘추시대 진목공(秦穆公)의 딸로, 퉁소와 생황에 뛰어났던 소사(蕭史)라는 인물의 아내인 농옥(弄玉)을 소재로 한 것으로 보인다. 소사가 아내인 농옥에게 피리 부는 법을 가르쳐줘서 두 사람은 속세의 부귀영화를 초탈하여 음풍농월(吟風弄月)하면서 살다가 어느 날 신선이 되어 부부가 각기 봉황(鳳凰)과 용(龍)을 타고 신선의 세계로 갔다는 전설이 전한다.
여동빈(呂洞賓)은 당나라 때의 인물로 중국 도교 팔선(八仙)의 하나이다. 신선도 속의 여동빈은 화양건(華陽巾)을 쓰고 모든 번뇌를 끊고 악의 세계를 제어한다는 검을 찬 모습으로 그려진다.
중국 도교에 등장하는 신선의 수는 500명도 넘는다고 한다. 황초평(黃初平)도 그 중의 하나로 중국 진(晉)나라 때의 도사(道士)였다고 한다. 전하는 그에 관한 일화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돌에게 소리쳐 양이 되게 한 이야기이고 그림은 그런 소재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 신선도들의 앞에 전(傳)자가 붙은 것은 아무래도 누군가 뒤에 써 넣은 그림 왼쪽 상단의 연담(蓮潭)이라는 글씨 때문으로 생각된다.
김명국의 도석인물화 가운데 별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꽤나 특이한 그림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명은 <김명국필 인물도>이지만 <은사도(隱士圖)>로 더 잘 알려진 그림이다.
머리까지 뒤집어쓴 옷을 입고 옆구리에 칼을 찬 것처럼 보이는 남자의 얼굴이 보이지는 않지만, 모습 자체만으로도 비장해 보인다. 유홍준 박사는 이 <은사도(隱士圖)>를 김명국이 자신의 죽음을 암시해 그린 '죽음의 자화상'이라고 했다. 근거는 그림 위에 쓰인 화제이다.
將無能作有 없는 것으로 있는 것을 만드니
畵貌豈傳言 그림으로 모습을 그릴지언정 무슨 말을 전하랴.
世上多騷客 세상에 시인이 많다고는 하나
誰招己散魂 이미 흩어진 나의 혼을 누가 불러 주겠는가.
<달마도>에서처럼 간결한 선 몇 개로 그린 그림이지만 그림의 느낌 역시 <달마도> 못지않게 강렬하다.
참고 및 인용 : 국립중앙박물관, 도교의 신들(이만옥 역, 2007,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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