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김두량 전원행렵도(田園行獵圖) 1

從心所欲 2021. 11. 9. 15:08

김두량(金斗樑, 1696 ~ 1763)은 조선 후기의 도화서 화원으로, 정선보다 20년 늦고 김홍도 보다는 50년 빠른 시기에 활동했다. 외조부 함제건(悌健)을 비롯하여 부친 김효강(金孝綱)과 김두량의 형제와 아들, 조카까지 화원을 지냈던 조선 후기의 대표적 화원가문 출신이었다.

 

문인화가였던 윤두서에게 그림을 배웠다고 하며, 22세 때인 1717년에 통영의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에 화원으로 배속되면서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하여 30세부터는 본격적으로 궁중의 여러 화사(畵事)에 참여하였다.

김두량은 영조에게서 남리(南里)라는 호를 하사받을 정도로 각별한 신임을 받으면서 실질적으로 도화서(圖畵署)의 실무를 관장하는 직위인 종6품 별제(別提)에까지 올랐다. 김두량은 산수, 인물, 풍속, 영모(翎毛) 등 여러 방면의 소재에 능숙했던 것으로 전한다.

 

전하는 김두량의 작품 중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목록에 《전원행렵도(田園行獵圖)》라는 이름의 그림이 있다. 높이가 불과 7 ~ 8cm에 불과한 화폭을 두루마리 형태로 길게 펼쳐 춘하추동 4계절을 그린 산수화다. 이 작품이 눈길을 끄는 것은 단순히 산수화가 아니고 그 속에 풍속을 담았다는 것이다. 계절에 따른 선비의 전원생활과 농촌의 생활모습이 함께 담겨져 있다. 그림 중에 마당질과 키질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는 이유로 이 그림이 <패문재경직도(佩文齋耕織圖)>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뒷날 김홍도에게서 꽃피는 우리 풍속화가 태동해가는 한 흐름으로 보기도 한다. 물론 복식은 아직 중국색이 남아있고 그림의 초점도 서민보다는 귀족적 취미에 맞춰져 있어 지나치게 갖다 붙일 일은 아니지만, 여하튼 종전의 인물산수화와는 다른 감각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전원행렵도(田園行獵圖)》는 봄여름을 그린 〈춘하도리원호흥도권(春夏桃李園豪興圖卷)>과 가을겨울을 그린 〈추동전원행렵도권(秋冬田園行獵圖卷)〉두 개의 횡축(橫軸)으로 구성되어있다.

 

[<춘하도리원호흥도권(春夏桃李園豪興圖卷)>, 견본채색, 8.5 x 183.3cm, 국립중앙박물관]

 

[<춘하도리원호흥도권(春夏桃李園豪興圖卷)> 오른쪽 첫 부분, 국립중앙박물관]

 

도권의 앞부분에는 먼저 春夏桃李園豪興景이라고 쓰여 있다. ‘봄여름 도리원(桃李園)의 호기로운 흥취 풍경’이라는 뜻이다. 도리원은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이 어느 봄날 밤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핀 정원[桃李園]에서 형제들과 모여 잔치를 벌이고 시를 지으며 놀았다는 고사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그림 속 장소는 상상이다.

이어서 峕甲子春正月吉日이라고 했다. 시(峕)는 시(時)의 옛 글자이다. 정월길일은 음력 정월 초하루이다. 글은 일녕헌(日寧軒)이 쓰고 도본(圖本)은 김두량(金斗樑)이라고 했다. 이로 미루어 이 그림은 김두량이 49세가 되던 1744년에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춘하도리원호흥도권(春夏桃李園豪興圖卷)> 오른쪽에서 두 번째 부분, 국립중앙박물관]

 

말을 탄 두 선비가 도화 꽃이 핀 길로 들어서고 있다. 이들은 도화꽃 핀 길을 따라 그림 왼쪽에 지붕만 보이는 집을 찾아 가는 길로 보인다.

 

[<춘하도리원호흥도권(春夏桃李園豪興圖卷)> 오른쪽에서 세 번째 부분, 국립중앙박물관]

 

그 집의 누각에는 이미 세 사람이 모여 술잔을 나누며 환담하고 있다. 옆에는 시동이 커다란 술병을 들고 술시중 중인데 바깥에서는 또 다른 동자가 새로운 술병을 들고 오고 있다. 그 옆의 시동이 들고 오는 장작개비처럼 보이는 것들은 감상할 서화나 아니면 시를 지으면서 사용할 종이들일 것이다.

 

[<춘하도리원호흥도권(春夏桃李園豪興圖卷)> 오른쪽에서 네 번째 부분, 국립중앙박물관]

 

초옥이 있는 마당에는 학이 노닐고 커다란 석상 위에 놓여 있는 차를 끓이는 화로는 집주인과 모임의 고아한 품격을 더해주고 있다. 고사차림의 인물이 다리를 건너오는데 마중이라도 하듯 학 한 마리가 대문을 나서는 설정은 이곳이 신선의 세계와 다름없다는 뜻일 것이다. 봄 풍경은 여기까지고 다리 끝의 왼쪽부터는 여름 풍경으로 넘어간 듯하다. 그곳에는 더 이상 복숭아꽃이 보이지 않는다.

 

[<춘하도리원호흥도권(春夏桃李園豪興圖卷)> 오른쪽에서 다섯 번째 부분, 국립중앙박물관]

 

녹음이 무성해진 나무속 집안에서 두 선비가 마주 앉아 대화를 하고 있다. 어쩌면 손으로 하는 대화인 수담(手談), 바둑을 두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춘하도리원호흥도권(春夏桃李園豪興圖卷)> 오른쪽에서 여섯 번째 부분, 국립중앙박물관]

 

이곳에도 역시 술이 빠져서는 안 되는 모양이다. 동자 하나가 술병을 들고 섶다리를 건너오고 있는 중이다. 왼쪽의 냇물에 발을 담그고 탁족(濯足)하는 인물은 그 뒤편 나무 아래 모인 인물들 사이에서 잠시 빠져 나와 더위를 식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춘하도리원호흥도권(春夏桃李園豪興圖卷)> 부분, 국립중앙박물관]

 

옆에서 시중드는 동자들이 없는 것과 복장으로 보아 어쩌면 이들은 앞의 건물 속 인물들처럼 선비나 고귀한 신분이 아닌지도 모른다. 모여 앉은 세 사람 중 오른쪽 인물의 복장이 다른 이들과 다르게 도포차림인 것과 그의 오른쪽 어깨 위로 보이는 악기가 눈에 띈다. 그 해석은 그림을 보는 이들의 몫이다.

 

[<춘하도리원호흥도권(春夏桃李園豪興圖卷)> 마지막 부분, 국립중앙박물관]

 

넓은 물과 낚시 하는 인물들, 그리고 정박한 배들로 여름 풍경을 장식했다. 쟁기를 어깨에 걸쳐 멘 농부의 모습도 한가롭기만 하다.

 

 

 

참고 및 인용 : 국립중앙박물관, 한국 역대 서화가 사전(2011. 국립문화재연구소)

'우리 옛 그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명국의 도석인물화  (0) 2021.11.15
김두량 전원행렵도(田園行獵圖) 2  (0) 2021.11.12
자기부정의 초상화  (0) 2021.11.01
십우도(十友圖)  (0) 2021.10.31
차(茶)와 신선  (0) 2021.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