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십우도(十友圖)

從心所欲 2021. 10. 31. 07:56

흔히 친구와 벗은 같은 의미로 쓰인다. 그런데 친구는 주로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벗에는 또 다른 의미도 있다. 벗은 사람이 늘 가까이하여 심심함이나 지루함을 달래는 사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館道人) 이인문이 그린 <십우도(十友圖)>라는 그림이 있다. 열 명의 친구나 벗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이 그림은 이인문 자신의 벗을 그린 것이 아니고 서직수(徐直修)라는 인물을 위하여 그린 것이다.

 

[이인문 <십우도(十友圖)>, 지본담채, 127.3 x 56.3cm, 국립중앙박물관]

 

폭포가 있고 물이 흐르는 계곡 옆에 여섯 인물이 고동(古董)과 서화(書畫)를 놓고 둘러앉아 있다. <십우도(十友圖)>라고 했는데 넷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또 모여 앉은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 답은 그림의 상단에 쓰인 제발(題跋)에 있다.

 

세상에 세 벗의 이로움을 얻은 이가 없는데 하물며 십우(十友)에 있어 서랴!
철형서(澈瀅書), 수경편(水鏡篇), 동법필(董法筆), 정종검(正宗劍), 초당시(草堂詩), 석전화(石田畵), 평우조(平羽調), 연의주(緣蟻酒), 화경집(花鏡集), 금신결(錦身訣).
이것이 곳 나의 열 벗이다[卽吾之十友也].

 

[이인문 <십우도(十友圖)> 中 제발부분]

 

현대의 우리로서는 알아듣기 힘든 명칭들인데, 다행히 뒤를 이어 각각의 벗들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그 첫째는 철형대사라는 친구로 천산(天山)과 만수(萬水)를 지팡이 하나로 지냈다.
두 번째는 수경도인이라는 친구니 인간의 화복을 물에 비추어 감지할 수 있다.
세 번째는 동필법이라는 벗으로 마음대로 붓을 휘두르거나 먹색을 그윽하게 하여 오봉(五峯)과 정신을 그려낸다.
넷째는 상자 속에서 우는 용이라는 벗이니 그 빛이 휘황하여 곁에 차고 있으면 사심이 없어진다.
다섯째는 화계노인이라는 친구니 동정호를 다툰 영웅으로 시(詩)의 성인이다.
여섯째는 성이 심(沈)이오 이름이 주(周)인 친구니, 풍운의 조화를 그려내어 앉아서 강산을 보게 한다.
일곱째는 왕(王)씨 성에 표(豹)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니 황종(黃鐘)이 첫 음만 울려도 만물이 봄처럼 온화해진다.
여덟째는 술의 풍미(風味)라는 벗이니 나를 적시어 화통케 하는 하늘이 내린 후한 녹봉(祿俸)이다.
아홉째는 반안인(潘安仁)이라는 벗으로 꽃과 나무를 심어 십 년을 계획한다.
열째가 회남왕(淮南王)이란 늙은 친구니 맥장(麥㙊)에서 단약을 빚어 학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림 중앙에 동파관(東坡冠)을 쓴 인물 오른쪽과 앞에는 모두 다섯 가지의 기물이 있다. 괴석으로 만든 필통에 꽂혀있는 붓들은 중국 명나라 말기의 화가이자 서예가인 동기창의 필법을 가리키는 동법필(董法筆)을 상징하고, ‘석전화(石田畵)’라고 쓰여 있는 펼쳐진 두루마리 그림은 명나라 때의 문인화가로 특히 수묵 산수화에 뛰어났던 심주(沈周)의 모습으로 자리한 것이다. 석전(石田)은 심주의 호이다.

 

[이인문 <십우도(十友圖)> 부분]

 

유약을 칠한 겉면에 갈라진 금들이 보이는 술병은 연의주(緣蟻酒)를 뜻하고, 그 앞에 놓인 책에는 ‘화경(花鏡)’이라는 제첨이 붙어 있어 꽃과 나무를 심어 미래를 계획했다는 반악(潘岳)을 대신했음을 짐작케 한다. 안인(安仁)은 반악의 자이다. 그 앞에 놓인 검은 정종검(正宗劍)을 나타낸다. 정종검(正宗劍)은 일본의 가마쿠라[鎌倉] 막부의 전속 도공이던 소슈 마사무네[相州正宗]가 만든 칼로, 일본도 가운데서도 명도(名刀)로 손꼽혀져 일본도의 대명사와 같은 이름이다.

 

[이인문 <십우도> 부분]

 

이렇게 다섯 벗이 등장했으니 십우(十友)에서 남은 벗은 다섯인데 그림에는 여섯 사람이 앉아있다. 여섯 가운데 다섯은 지팡이에 의지하여 마음껏 세상 유람을 했다는 철형대사, 사람의 화복을 물에 비추어 알아낸다는 수경도인(水鏡道人), 음악에 뛰어났다는 왕표, 중국의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두보(杜甫), 한나라 고조(高祖)의 손자로 방술가(方術家) 수천을 모아 도(道)에 관한 책인『회남자(淮南子)』를 편찬한 유안(劉安)일 것이다. 스님 모습의 인물만 철형대사로 추정이 될 뿐 나머지 인물들에 대해서는 누가 누구라고 꼭 집어 말할만한 단서는 없다.

 

이제 그림 속의 남은 한 사람은 당연히 자신의 십우(十友)를 소개한 당사자일 것이다. 그 주인공은 그림 속 인물들의 배치를 봤을 때 가운데 동파관(東坡冠)을 쓰고 가슴에 세조대(細條帶)를 맨 인물로 보인다.

그의 이름은 서직수(徐直修)이다.

서직수는 제발에 십우(十友)를 소개한 뒤에 자신에 대하여 이렇게 적었다.

 

주인옹(主人翁)이 옛날 열다섯 살에 미호(渼湖) 김선생의 문하에 책 상자를 지고 나아갔다. 학문에 뜻을 둔지 수년 만에 겨우 서쪽을 유람하였다. 구월산과 패수(浿水)의 누각에서 음악과 여색이 화려하여 호담암(胡澹菴)이 평생을 그르쳤다고 했던 시처럼 될 뻔하였다. 한 세상을 배회하며 비록 청탁(淸濁)을 잃은 바는 없으나 끝내 득이 되는 셋을 얻지도 못하였다. 지금 이후로는 교제를 그치고 유희를 끊고 열 벗과 어울려 의지하려한다. 영숙(永叔)의 여섯에 넷을 더하였고 문방의 넷에 육을 더한 것이다. 내 벗이 있으니 반드시 외롭지 않을 것이다.

 

미호(渼湖) 김선생은 조선 후기 대표적 노론 인사였던 김창협(金昌協)의 손자인 김원행(金元行)이다. 호담암(胡澹菴)은 남송(南宋) 시기의 관리이자 문학가였던 호전(胡銓)으로 호가 담암(澹菴)이다.

영숙(永叔)은 송나라의 정치가이자 문인이며 뛰어난 서예가였던 구양수(歐陽修)의 자이다. 구양수는 젊었을 때는 ‘술 취한 늙은이’라는 뜻의 취옹(醉翁)이라는 호를 쓰다가 나이 들어서는 육일거사(六逸居士)로 호를 바꿨다. 육일(六逸)은 구양수가 소장하고 있던 금석 문헌(金石文獻) 1천 권, 장서(藏書) 1만 권, 거문고 1장(張), 바둑판 1국(局), 술 한 단지[壺]에다 구양수 자신의 1노(老)를 합한 것이다. 서직수는 구양수의 이 여섯에 넷을 더하여 십우(十友)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구양수의 육일(六逸)과 서직수가 열거한 십우(十友)가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구양수의 뜻을 자신도 본받았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림에 제발로 쓰여진 이 글은 원래 <십우헌기(十友軒記)>라는 글로, 서직수가 경복궁 뒤편의 대은암(大隱巖) 부근에 새집을 구입한 뒤 당호(堂號)를 십우헌(十友軒)으로 이름 붙이고 지은 글이다. 글을 쓴 뒤 내친 김에 당대의 제일가는 화원이었던 이인문에게 그림까지 부탁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서직수가 벗으로 꼽은 열 가지는 사람이 아닌 책, 필법, 그림, 유람, 검, 도학, 원예, 화복을 아는 혜안, 음악, 시이다. 이인문은 이 십우(十友)를 사람과 기물을 섞어 아회도(雅會圖)와 같은 분위기로 그려냈다.

제발의 끝에 달린 ‘계묘년 중추 면망 주인시우기(癸卯中秋免望主人詩又記)’라는 관지를 통해 그림이 그려진 때가 1783년 팔월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서직수의 나이는 49세였다.

 

 

 

참고 및 인용 : 초상에 담지 못한 사대부의 삶 - 이명기와 김홍도의 <서직수초상화>( 이경화, 미술사논단 34호), 한시어사전(2007, 전관수), 십우도(송희경, 한국미술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