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 유토피아(Utopia)가 있다면 동양에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있다.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향(理想鄕)이다. 그런데 서양의 유토피아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곳(nowhere)’의 개념이지만 동양의 무릉도원은 ‘어딘가에는 꼭 있을 것’이라 믿어지고 또 ‘어디에든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개념이다.
김수철이 그린 <무릉춘색도(武陵春色圖)>에도 그런 생각이 담겨있다.
種桃隨處武陵春 복숭아나무 심은 곳마다 무릉도원의 봄이거늘
那必雲中去問津 어찌 곡 구름 속으로 들어가 나루터를 묻는가.
相見當年源裏客 그때의 도원(桃源) 속 나그네를 만나보니
多應本分力田人 본분이 응당 농사에 힘쓰는 사람이로세.
굳이 무릉도원으로 들어가는 나루터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복숭아나무를 심어놓으면 그곳이 바로 무릉도원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림 속 아래쪽 정자 안에 앉아 산천을 바라보는 선비의 모습이 한가롭다.
제시 끝에 ‘임술년 음력 8월, 보산학사를 위하여 북산(北山)의 그림 한 폭에 제합니다. 자리에 두고 보십시오. 송료음생[壬戌中秋 題北山寫意一幅 爲寶山學士 淸座 松寮唫生]’ 이라고 적혀있다. 송료음생이라는 인물이 보산학사를 위하여 김수철의 그림에 제하였다고 했으니 제시는 김수철이 쓴 것은 아니다. 제시를 쓴 임술(壬戌)년은 1862년으로 추정되어 이 그림은 1862년 또는 그 이전에 그려졌다는 이야기가 된다.
담채와 담묵으로 채워진 그림이 마치 현대의 수채화와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림도 맑고 담백하지만 제발 또한 그에 못지않다.
幾回倦釣思歸去 又爲花住一年
몇 번이나 낚시에 진력이나 돌아갈 생각을 했지만
다시 또 꽃 때문에 한 해를 더 살기로 했네.
두 그림에 적힌 제시가 모두 같다.
身忙見畵剛生愧 바쁘게 사는 내가 그림을 보니 자괴감이 생기는데
安得淸閒似畵中 어디서 그림 속과 같은 청한(淸閒)함을 얻겠는가.
속세를 떠나 자연 속에 머물러 살고 싶어하는 심정이 그림마다 절절하다.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간송미술관에서는 <송계한담도>가 “김수철 스타일의 산수화 중에서도 가장 가락 잡힌 세련된 솜씨를 나타냈다. 인물묘사에 나타난 대담한 생략이라든지 장송(長松)들의 지세(枝勢)가 보여주는 풍운은 독보적 경지를 보이고 있다.”라고 소개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그냥 산수도로 이름 지었지만 두 그림은 추경산수도라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나무에는 나뭇잎이 떨어지고 여름에 무성했던 푸른빛은 많이 옅어진 반면 화폭은 갈색이 주조를 이룬다.
참조 및 인용 : 국립중앙박물관, 간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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