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다운 나라

도원으로 가는 길을 묻다.

從心所欲 2021. 1. 16. 07:52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은 일제에 의해 훼손되는 경복궁을 안타까워하며 <백악춘효(白岳春曉)>를 여름과 가을에 두 번이나 그린 1915년, <도원행주도(桃源行舟)>라는 그림도 그렸다.

 

[안중식 <도원행주도(桃源行舟圖)>, 견본채색, 238.6 x 65.5㎝, 국립중앙박물관]

 

그림 오른쪽 상단에 적은 제발 끝의 ‘을묘년 늦은 봄(時乙卯暮春)’이라는 관지를 통해 이 그림이 1915년에 그려진 사실을 알 수 있다.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무릉(武陵)에 사는 한 어부가 배를 타고 가다가 길을 잃어 복숭아꽃이 만발한 별천지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그림에 그대로 담겨있다. 고사(古事)에 걸맞게 높은 산세와 기이하고 복잡한 산수의 모습을 녹색과 분홍색을 사용하여 환상적인 이상향을 그려 놓았다.

 

[안중식 <도원행주도(桃源行舟圖)> 부분]

 

그런데 이 아름답기만 한 그림을 보고 있는데 공연히 가슴이 아프다. 혹시 안중식 그 자신이 ‘도원(桃源)으로 가는 배’에 타고 있는 어부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다.

 

[안중식 <도원행주도(桃源行舟圖)> 부분]

 

안중식은 삼일운동 민족대표 33인에 속한 인물들과 친했다는 이유로 일제에 잡혀가 문초를 당하고 풀려난 후, 평소 앓던 병이 악화되어 1919년 11월 세상을 떠났다. 그는 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지평(砥平)현감을 거쳐 안산군수, 통진(通津)군수, 양천 군수 등을 거친 조선의 관리이기도 했다. 따로 독립운동을 하지는 않았더라도, 스러져가는 조선의 모습에 마음 아파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1906년에 설립된 애국계몽운동 단체인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에 가입하기도 하였는데, 이 단체는 다음 해 이완용 내각에 의하여 해체되었다.

▶지평현 :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지방, 통진(通津) : 경기도 김포 월곶면 일대

 

안중식은 1913년에도 ‘도원으로 가는 나루를 묻는다’는 도원문진(桃源問津)이라는 그림을 그렸다.

 

[안중식 <도원문진도(桃源問津圖)>, 견본채색, 164.4 x 70.4㎝, 삼성미술관 리움]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는 화가들의 일상적 화재(畵材)였다. 안중식이 일제에 고통 받는 조선의 현실을 보며 무릉도원을 꿈꿨다는 것은 혼자만의 뇌피셜일 수도 있다.

 

그래도 이 새벽 이 아름다운 그림을 보며 ‘No Japan Forever!'를 다짐한다.

우리나라와 겨레가 도원(桃源)으로 가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