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들

난정집서와 Don't Touch Me

從心所欲 2020. 10. 10. 21:52

 

[왕희지 초상화]

 

왕희지(王羲之, 307 ~ 365)는 중국 고금(古今)의 첫째가는 서성(書聖)으로 존경받는 동진(東晋)의 서예가이다. 특히 그는 천하제일행서(天下第一行書)로 일컬어졌는데 그 중에서도 그가 쓴 <난정집서(蘭亭集序)>는 왕희지 글씨 중에서도 ‘행서(行書)의 신품(神品)’이라고 불리며 이후 한·중·일 삼국의 서예가들 모두가 천하제일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353년 3월 3일 회계(會稽) 산음의 난정(蘭亭)에 당시의 명사 41명이 모여 시회를 갖았다. 그때 모임에 참석한 이들이 지은 시들을 모아 난정집(蘭亭集)이라는 시집을 만들기로 하여 왕희지가 이 시집의 서문을 썼다. 당시 왕희지는 술을 마신 가운데 글을 썼는데 글자는 모두 28행 324자였고 그 가운데 ‘지(之)’자가 모두 스무 자였다. 왕희지가 나중에 자신이 쓴 글씨를 보니 20개의 지(之)자가 다 모두 쓴 모양이 달랐다. 놀란 왕희지는 다시 그렇게 써보려고 몇 번을 시도했지만 결국 그렇게 해내지 못했다. 그리하여 이 <난정집서>는 천하의 서성 왕희지가 다시 쓰려고 해도 쓰지 못한 천하제일의 글씨로 여겨져 후대 서예가들이 글씨의 표본으로 삼아 임모해왔던 글씨다.

 

그러나 사실 지금 우리가 접하는 난정서는 왕희지의 진적이 아니다. 서예를 좋아했던 당나라 태종 이세민이 왕희지의 글씨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어렵게 그 진본을 구하여서는 당시의 명필이었던 구양순, 우세남, 저수량에게 임모하게 하고는 정작 진본은 자신의 무덤에 같이 순장하도록 유언을 남겨 묻어버린 까닭이다.

 

[당나라시대 난정서 필사본]

 

오늘 MBC의 ‘놀면 뭐하니?’에서 ‘환불원정대’의 ‘Don't Touch Me.'라는 곡의 음원이 발표되었다. 만옥, 천옥, 실비, 은비의 각기 개성 있는 목소리가 너무나 잘 조화되어 듣기 즐거웠다. 라도의 가이드 버전보다 더 좋은지는 모르지만 “자꾸 건드리네. Don't Touch Me”라는 가사를 네 명이 각기 다르게 소화한 것을 듣다가 갑자기 왕희지의 <난정집서>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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