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삼기재(三奇齋) 최북 5

從心所欲 2021. 5. 20. 11:38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중에 여러 화가의 그림을 모은 화첩이라는 뜻의 「제가화첩(諸家畵帖)」이 있다. 그러나 실제 첩에 실린 그림은 심사정의 화훼도 2점을 제외하면 모두가 최북의 그림이다.

이 화첩에 눈에 띄는 최북의 그림이 있다. 흔히 ‘일출(日出)’이라고 소개되는 그림이다.

 

[「제가화첩(諸家畵帖)」中 최북 <창해관일본(滄海觀日本)>, 지본담채, 24.5 x 32.5cm, 국립중앙박물관]

 

최북이 그림에 쓴 화제는 ‘창해관일본(滄海觀日本)’이다. ‘너른 바다에서 日本을 보다’라는 뜻인데, 여기서 日本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조금 난해하다. 일본이란 나라 이름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해의 근본’이나 ‘해의 본모습’으로 해석할 수도 있으며, 어쩌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담고 있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최북은 1747년에 일본으로의 통신사행에 동행했었다. 조선시대에는 먼 길을 떠나는 관리에게 주변 인물들이 전별의 글인 ‘신장(贐章)’을 지어주어 떠나는 회포(懷抱)를 나누는 것이 관례였다. 성호 이익은 일본으로 떠나는 최북을 위하여 <최칠칠을 일본에 보내며(送崔七七之日本)>란 제목으로 7언 율시 3수(首)를 지어주었는데, 그 마지막 수(首)가 이렇다.

 

拙懶平生欠壯觀 (나는) 못나고 게으른 삶이라 장관을 보지 못했지만

奇遊天外隔波瀾 (그대는) 하늘 저편 좋은 유람이 물결을 건너게 되었구나.

扶桑枝上眞形日 부상(扶桑) 가지에 걸린 해의 참 형상을

描畵將來與我看 부디 잘 그려와 나에게 좀 보여 주게

 

최북의 <창해관일본(滄海觀日本)> 그림이 이익의 이 시에 부응해서 그린 그림이라고 할만한 근거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 그림이 최북이 일본에 가는 배안에서 그려졌을 것이라는 짐작은 충분히 해볼 만하다. 바로 ‘日本’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조선시대 일출(日出) 그림에 日本이란 단어를 쓴 예는 없다. 또 일본에 관한 그림이라도 화제에 일본이라는 단어를 직접 쓰는 일도 없었다. 그런데도 최북이 왜 굳이 이런 생경한 단어를 그림 화제에 썼을까 하는 의문이 들 지 않을 수 없다. 화제를 그대로 해석하면 창해에서 일본이라는 나라를 봤다는 것이다. 일본을 봤건 해의 본모습을 봤건 최북이 바다 위에서 해돋이를 볼 일이 이때 말고 또 언제 있었을까?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가는 도중에 일본의 어느 바다에서 일출 광경을 만나 이 그림을 그리고는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본 해돋이라는 이중적 의미로 쓴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보는 것이다.

 

[「제가화첩(諸家畵帖)」中 최북 <북창한사도(北窓閑寫圖)>, 지본담채, 24.5 x 32.5cm, 국립중앙박물관]

 

「제가화첩(諸家畵帖)」에 들어 있는 또 다른 그림이다. 이 그림은 소위 시의도(詩意圖)이다. 시의도(詩意圖)란 시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시가 전달하려는 분위기나 시정(詩情)을 표현한 그림이다.

그림 오른쪽에 화제로 쓰인 글은 ‘北窗時有凉風至 閒寫黃庭一兩章(북쪽 창에 때마침 서늘한 바람 불어오니, 한가롭게 황정경이나 한두 장 베껴본다.)’이다. 중국 조맹부(趙孟頫)의 <즉사이수(卽事二首)>라는 시의 일부분이다. 시 구절에 나오는 황정경(黃庭經)은 양생과 수련의 원리를 담고 있는 도가(道家)의 경전이다. 시의 내용대로 그림에는 선비가 창문을 활짝 열어놓은 방에 앉아 경상(經床) 위에 종이를 올려놓고 무언가를 쓰는 모습이다.

문득 이 모습이 떠돌이 생활을 하던 최북이 마음속에 꿈꾸던 삶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아래 그림과

같은 삶을 꿈꿨을지도 모른다.

 

[「제가화첩(諸家畵帖)」中 최북의 그림, 지본담채, 24.5 x 32.5cm, 국립중앙박물관]

 

전하는 최북의 그림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아무래도 <풍설야귀인(風雪夜歸人)>일 것이다. ‘눈보라치는 밤에 돌아오는 사람’이라는 화제가 붙여진 그림에는 지팡이를 짚은 인물이 동자를 데리고 어느 집 앞을 지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최북 <풍설야귀인(風雪夜歸人)>, 지본채색, 66.3 x 42.9cm, 개인]

 

산과 길은 눈으로 뒤덮여 있고, 나뭇가지들은 곧 부러질 듯, 왼쪽으로 심하게 휘어져 있다. 세찬 바람이 불어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 바람을 맞으며 밤길을 가는데 개까지 튀어나와 짖어대기까지 하니 거친 자연 속에 작게 그려진

인물들의 처량함이 한층 더 돋보인다.

이 그림은 붓 대신 손가락으로 그린 지두화(指頭畵)로 알려져 있다. 화제로 쓰인 ‘풍설야귀인(風雪夜歸人)’은 당나라 시인 유장경(劉長卿)이, 눈 내리는 날에 부용산 주인을 만나 하룻밤을 머무르며 그 감회를 적은 시인 ‘봉설숙부용산주인(逢雪宿芙蓉山主人)’의 한 구절이다.

 

日暮蒼山遠 날이 저물고 푸른 산은 먼데

天寒白屋貧 차가운 하늘 밑 눈 덮인 집이 쓸쓸하다.

柴門聞犬吠 사립문에 개 짖는 소리 들리고

風雪夜歸人 눈보라 치는 밤에 돌아오는 사람

 

화제와는 달리 그림 속에는 인물들이 돌아갈 집은 보이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지만 어쩌면 추위와 싸우며 가야할 길은 아직도 많이 남았는지 모른다.

눈 속에 얼어 죽었다는 소문을 떠올리면 이 그림은 마치 최북의 고단한 삶을 상징하는 그림처럼 느껴져 더 처량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참고 및 인용 : 국립중앙박물관,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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