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력을 중시하는 지금의 예술관과는 달리 옛 동양회화에서는 남의 그림을 모방하는 것은 전혀 흠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대가의 좋은 그림을 모사(模寫)하면서 그 정신과 기법을 체득하는 것이 그림 제작의 중요한 요체로 장려되었다. 그래서 지금 전하는 옛 그림들에는 누구누구의 그림이나 필법을 ‘방(倣)’했다는 화제가 적힌 그림들이 많다. ‘방(倣)’은 특정한 화가의 화풍이나 사의(寫意)를 따랐다는 의미다. 조선 후기에는 주로 원(元)나라 말기의 산수화가 예찬(倪瓚)과 명나라의 문인화가였던 심주(沈周), 그리고 명나라 말기의 화가이자 서예가였던 동기창(董其昌)을 방(倣)한 예가 많다. 이들은 모두 남종문인화 계열의 화가들이었다. 전하는 심사정의 작품 중에 《방고산수첩(倣古山水帖)》이 있다. 어느 특정화가가 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