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적(陽翟)의 신군(辛君)은 선배들 가운데 어진 사람이다. 어려서 아버지의 덕으로 벼슬을 얻었으나 은거(隱居)하고 출사(出仕)하지 않았다. 그는 소자용(蘇子容) 승상(丞相)의 처남(妻男)이고 이정(二程 : 정호(程顥)ㆍ정이(程頤)) 선생의 외숙(外叔)이다. 당시 소 승상이 한창 성할 때여서 자주 그를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다. 이천(伊川 : 정이(程頤)) 선생이 원풍(元豐) 연간에 해마다 낙중(洛中)으로부터 와서 영창(潁昌)에 있는 한지국(韓持國 : 지국은 한유(韓維)의 자)을 방문했는데, 양적을 지날 때는 반드시 신군의 집에서 10여 일씩 머무르곤 하였다. 그의 집에는 7칸짜리 대옥(大屋)이 있었는데, 집 뒤에는 온통 기화이초(奇花異草)가 피어 있어 평생토록 자락(自樂)하였다. 《와유록(臥遊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