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관 2

목민심서 151 – 검시관으로 차출되더라도 피하지 말아야 한다.

●봉공(奉公) 제6조 왕역(往役) 5 인명(人命)에 관한 옥사(獄事)에 검시관(檢屍官)이 되기를 피하려 하면 국가에는 그것을 다스리는 일정한 법률이 있으니 범해서는 안 된다. (人命之獄 謀避檢官 國有恒律 不可犯也) ▶봉공(奉公)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3편인 봉공(奉公)은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고 공경으로 윗사람을 섬기는 등, 공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6조로 나누어 논하였다. 봉공(奉公)의 제6조인 왕역(往役)은 ‘차출되는 일’를 말한다. ▶검시관(檢屍官) : 조선시대 변사자(變死者 )의 시체를 검사하던 관원. 검시의 대상은 피살자와 기타 변사자, 옥중이나 취조 도중 사망한 죄수, 귀양지에서 사망한 자들이 포함되었다. 검시는 보통 2회에 걸쳐 시행되었다. 초검관(初檢官)은 서울에서는 오부(五..

목민심서 2022.07.31

조선의 당쟁 20 - 가짜뉴스

인목대비는 광해군을 “민가 수천 채를 철거하고 두 채의 궁궐을 건축하면서 10년 동안 토목공사를 그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이 모두 불타버려 1593년 10월 한양으로 돌아온 선조는 왕족의 사저(私邸)로 쓰이던 곳을 궁으로 개조하여 그곳에서 15년간을 지냈다. 선조가 죽을 때까지도 선조가 지내던 곳의 명칭은 정릉동 행궁이었다. 행궁(行宮)이란 임금이 궁궐 밖으로 행차할 때 임시로 머물던 별궁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조선의 왕이 자기 거처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는 상황이었다. 태조3년에 창건된 경복궁, 태종 11년에 창건한 창덕궁, 성종15년에 창건한 창경궁까지 선왕들이 세워놓은 3개의 궁을 임진왜란 때 선조가 다 태워먹었다. 선조는 미안해서 궁을 다시 짓지 않고 정릉동..

조선의 당쟁 2020.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