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 2

허균 32 - 한정록(閑情錄) 광회(曠懷) 2

「한정록(閑情錄)」은 허균이 중국 서적에 나오는 ‘은거(隱居)’에 대한 글들을 16가지 주제로 나누어 정리한 글이다. 광회(曠懷)는 9번째 주제로 허균은 그 의미를 이렇게 풀이했다. “장부(丈夫)의 처세(處世)는 마땅히 가슴이 탁 트이도록 가져야 하니, 상황에 따라 마음을 크게 먹고 순리(順理)로써 스스로를 억제하면 인품(人品)이 고상하게 되기를 바라지 않더라도 자연 고상하게 된다. 그러므로 제9 ‘광회(曠懷)’로 한다.” ● 축법심(竺法深 : 진(晉) 때의 중)이 간문제(簡文帝)와 대좌(對坐)하고 있는데, 유윤(劉尹)이 묻기를, “도인(道人)이 어찌 주문(朱門 : 권력이 있는 훌륭한 집안)에서 노는가?” 하니, 법심이, “그대는 주문(朱門)으로 보이나 나는 봉호(蓬戶 : 빈천한 집)에서 노는 것과 같소..

우리 선조들 2021.10.04

조선의 당쟁 20 - 가짜뉴스

인목대비는 광해군을 “민가 수천 채를 철거하고 두 채의 궁궐을 건축하면서 10년 동안 토목공사를 그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이 모두 불타버려 1593년 10월 한양으로 돌아온 선조는 왕족의 사저(私邸)로 쓰이던 곳을 궁으로 개조하여 그곳에서 15년간을 지냈다. 선조가 죽을 때까지도 선조가 지내던 곳의 명칭은 정릉동 행궁이었다. 행궁(行宮)이란 임금이 궁궐 밖으로 행차할 때 임시로 머물던 별궁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조선의 왕이 자기 거처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는 상황이었다. 태조3년에 창건된 경복궁, 태종 11년에 창건한 창덕궁, 성종15년에 창건한 창경궁까지 선왕들이 세워놓은 3개의 궁을 임진왜란 때 선조가 다 태워먹었다. 선조는 미안해서 궁을 다시 짓지 않고 정릉동..

조선의 당쟁 2020.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