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심사정 화집(畵集)

從心所欲 2021. 4. 23. 06:05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은 증조부가 영의정을 지내고 조부도 성천부사를 지낸 명문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조부 심익창(沈益昌)이 영조가 왕세제이던 연잉군(延礽君) 시절에 왕세제 시해에 가담하였던 죄로 인하여 집안은 이미 몰락한 상태였다. 비록 심사정의 부친과 심사정은 화를 면하였지만 역모 죄인의 집안이란 낙인 때문에 관직은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었다.

 

부친 심정주(沈廷胄)는 포도를 잘 그렸다고 하는데, 포도와 인물을 잘 그렸다는 외조부 정유승(鄭維升)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짐작된다. 심사정도 이런 집안 소질을 이어받아 산수, 화조, 인물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다양한 재능을 발휘하였다. 어려서는 정선(鄭敾)의 문하에서 직접 그림을 배운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강세황이 안산에 머물렀을 때 가까이 지냈고, 강세황은 또 그의 그림에 많은 화평을 남겼다. 심사정은 이인상(李麟祥), 강세황(姜世晃) 등과 함께 18세기 화단에 남종화풍이 유행하고 정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몰락한 양반의 신분으로 거의 직업 화가와 같은 삶을 살았던 심사정은 하루도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고 전해진다. 그의 화풍은 화법을 익혀가던 초기에는 남종화법에 몰두했고, 이후 여기에 북종화법의 하나인 절파화풍을 절충하였다가, 50이 넘은 이후에는 남북종의 여러 화법을 종합하여 자신만의 화풍을 이루어갔다.

국립박물관의 소장품 중에 제목도 없는 심사정의 화집(畵集)이 있다.

 

[심사정 「화집」표지]

 

이 화첩에 대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소개다.

 

【산수화 세 점, 국화 그림 두 점, 나비와 꽃 그림, 신선 그림, 채소 그림이 수록된 화첩이다. 원래의 순서와 현재의 순서가 같은지는 파악되지 않는다.

그림 9점 중 7점에 ′현재(玄齋)′라는 서명이 있고 인장이 찍혀 있다. 심사정 작품은 대체로 소재와 구도면에서 화보를 많이 따르고 있는데 이 화집의 산수화, 꽃 그림들 또한 그러하다. 산수화 세 점은 남종산수화풍으로 특정 산수를 그린 것은 아니다.

나비와 꽃 그림은 괴석 사이에 피어난 패랭이꽃을 향해 나비가 날아오는 정경을 그린 것으로 이와 유사한 심사정의 작품들이 여러 점 전해지고 있다. 이 화집에서 특이한 것은 신선 그림으로 정확히 어떤 신선 이야기를 그린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산수 배경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당대의 여타의 신선 그림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심사정 「화집」중(中) 산수화, 견본담채, 국립중앙박물관]

 

[심사정 「화집」중(中) 국화, 국립중앙박물관]

 

[심사정 「화집」중(中) 나비와 꽃, 국립중앙박물관]

 

[심사정 「화집」중(中) 산수화, 견본담채, 국립중앙박물관]

 

[심사정 「화집」중(中) 산수화, 견본담채, 국립중앙박물관]

 

[심사정 「화집」중(中) 신선, 국립중앙박물관]

 

[심사정 「화집」중(中) 신선, 국립중앙박물관]

 

[심사정 「화집」중(中) 채소, 국립중앙박물관]

 

[심사정 「화집」중(中) 국화, 국립중앙박물관]

 

 

 

 

참고 및 인용 : 국립중앙박물관, 한국의 미술가(안휘준 외, 2006, 사회평론), 한국민족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