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이방운의 사군산수 「사군강산삼선수석(四郡江山參僊水石)」2

從心所欲 2021. 7. 19. 09:59

[이방운 「사군강산삼선수석」첩 中 <구담(龜潭)>, 지본담채, 32.5 x 52.0cm, 국민대박물관]

멀리서 보면 마치 거북이 한 마리가 기어오르는 듯한 형상의 바위가 물에 비치면 거북 무늬 모양을 띄어 각기 구담(龜潭)과 구담봉(龜潭峯)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곳으로, 역시 단양팔경 가운데 하나다.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도 이곳을 유람하고 시를 남겼다. 그런가하면 일찍이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산수와 더불어 평생을 보냈던 단릉(丹陵) 이윤영(李胤永, 1714 ~ 1759)은 평소에 단양의 산수를 좋아하여 즐겨 찾다가, 부친이 담양 부사로 재직하게 되자 이를 계기로 구담(龜潭)에 정자를 짓고 지냈다. 또한 그의 절친한 벗이었던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 1710 ~ 1760) 역시 관찰사와 다툰 뒤 관직을 버리고 평소 좋아하던 단양에 은거하여 시서화를 즐기며 여생을 보냈다. 이인상은 구담에 은거하는 삶을 구상하며 <구담소기(龜潭小記)>를 지었고, 그곳에 다백운루(多白雲樓)를 지을 만큼 구담을 사랑하였다.

[이방운 「사군강산삼선수석」첩 中 <의림지(義林池)>, 지본담채, 32.5 x 52.0cm, 국민대박물관]

의림지는 삼국 시대 축조된 것으로 전하는 오래된 저수지다. 이방운은 의림지를 실제 모습과는 달리 네모진 연못[方池]으로 재구성하여 그렸다.

조영경은 의림지를 방문한 것에 대하여 “(1802년) 9월 초 아흐렛날, 지필묵을 준비하여 유람을 떠났다. 제천현에서 점심을 먹고 나니 10리쯤 되는 곳에 큰 못이 있었다. 의림지는 어떤 곳인가? 농경지에 물 댄 공(功)이 이와 같이 크다.”고 적었다.

아울러 이방운의 그림 좌측에 자신이 본 의림지에 대한 감회를 칠언율시로 읊었다.

水蘭山菊惜香衰  수란과 산국화 향기 시드는 것 애석하여
小棹沿洄百頃遲  조그만 배로 넓은 호수를 더디게 배회하네.
自有渚涯成器局  저절로 물가와 제방 형세 이루어졌으니
誰云澇旱被盈虧  누가 장마와 가뭄으로 넘치고 줄어든다고 말하는가?
雲端不識源窮處  구름 저 멀리 물줄기 시작되는 근원을 알지 못하는데
壑底惟看瀑始垂  골짜기 밑에는 폭포수 떨어지는 것만 보일 뿐이네.
高唱大堤歌一曲  방죽 노래[大堤曲] 한 곡조 크게 부르니
跳魚飛鴨各天姿  뛰는 물고기와 나는 오리는 자연스런 모습이어라.

[이방운 「사군강산삼선수석」첩 中 <수렴(水簾)>, 지본담채, 32.5 x 52.0cm, 국민대박물관]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 산자락에 위치한 신륵사에서 보광암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수렴선대(水簾仙臺)다. 수렴(水簾)은 ‘물로 친 발’이라는 의미이면서 일반적으로 폭포(瀑布)를 아름답게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그림에 조영경은 오언율시로 이렇게 적었다.

盛名猶未信  큰 폭포란 소문 아직 믿지 않았는데
初眼依亦然  첫눈에 보니 소문 그대로이네
下下開金石  아래로 내려가며 금석이 열리면서
高簾隔半天  높은 주렴이 하늘 중간쯤 걸려 있네.
飄分珠顆散  구슬 같은 물방울들 질풍처럼 흩어지며
斜落玉繩連  하얀 새끼줄이 연달아 비껴 떨어지네.
忽憶三庚熱  홀연 불꽃같은 삼복더위를 생각하면서
當前露頂眠  폭포 앞에서 이마를 드러낸 채 자노라

수렴선대는 폭포수가 흘러 내려오는 상단에 다리를 설치하고 소로를 만들면서 주변의 자연환경이 훼손되어 현재는 그 흥취가 사라졌다고 한다.

[이방운 「사군강산삼선수석」첩 中 <사인암(舍人巖)>, 지본담채, 32.5 x 52.0cm, 국민대박물관]

 

사인암(舍人巖)은 단양팔경 중 하나로 푸른 계곡을 끼고 있는 70m 높이의 기암절벽이다. 약 50m에 이르는 수직·수평의 절리(節理)가 마치 수많은 책을 쌓아 놓은 모습을 하고 있어 사인암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하고, 고려 말 역동(易東) 우탁(禹倬)이 사인(舍人) 벼슬에 있을 때 이곳에서 자주 노닐었다는 사연에 따라 조선 성종 때 단양 군수 임재광이 이름을 붙였다고도 한다.

암벽에 ‘卓爾弗群 確乎不拔 獨立不懼 豚世無憫’ 즉. "뛰어난 것은 무리에 비유할 것이 아니며 확실하게 빼지 못한다. 혼자서도 두려운 것이 없으며, 세상에 은둔해도 근심함이 없다"라는 우탁의 친필이 각자되어 있다.

 

조영경은 서화첩에 사인암에 대하여 이런 시를 남겼다.

醉生至夢死  취한 듯 살다가 꿈꾸듯 죽는 인생
我心常慽慽  나의 마음은 늘 슬프구나.
薄遊愜素願  잠깐의 유람이나 평소 바라던 것
杖屨山之谷  짚신에 지팡이 짚고 산골짜기를 다니네.
巋然巖獨立  우뚝하여라 바위 홀로 서 있는데
舍人誰事蹟  사인암은 누구의 자취인가
玲瓏三疊壁  영롱하여라 세 겹의 절벽
繩墨千尋直  먹줄 놓은 듯 천 길이나 곧구나.
澄明七曲水  일곱 구비 맑디맑은 물
玉鏡一泓碧  한 웅덩이 푸른 옥거울
床平復枕高  반반한 돌은 상, 높은 돌은 베개
天借人臥石  하늘이 사람 누울 바위를 빌려주었네.
溪輿勝江舟  계곡 길 가마가 강의 배보다 나으니
安身放幽矚  편안한 자세로 그윽이 경치를 감상하네.

 

총 16면으로 된「사군강산삼선수석」첩의 구성은 아래와 같다.

 

1면 : 내제(內題) '四郡江山參僊水石'

2면 : <도화동도(桃花洞圖)>

3면 : 부용벽(芙蓉壁) 아래 청풍강 주변에서 배와 도보로 유람하는 모습을 읊은 오언율시 2수

4면 : <평등석도(平等石圖)>

5면 : 청풍 한벽루, 제천 의림지, 영춘 북벽 유람 과정과 감회를 담은 오언고시

6면 : <금병산도(錦屛山圖)>

7면 : 청풍관아 관련 칠언율시 2수와 오언고시 1수

8면 : <도담도(島潭圖)>

9면 : 도담삼봉에서의 뱃놀이 감회를 담은 오언고수 1수와 석문(石門)에 대한 칠언율시 1수

10면 : <구담도(龜潭)>

11면 : 구담에 대한 소회를 읊은 칠언고시 1수와 구담의 경관을 읊은 칠언율시 2수.

12면 : <의림지도(義林池圖)> 및 칠언율시 1수

13면 : <수렴도(水簾圖)> 및 오언율시 1수

14면 : <사인암도(舍人巖圖)>

15면 : 사인암에 관련 오언고시와 오언율시 2수

16면 : 조영경의 친구인 김양지라는 인물이 1803년 정월에 쓴 서화첩의 제작 경위를 밝힌 발문(跋文).

 

 

참조 및 인용 : 향토문화전자대전(한국학중앙연구원), 사인암에 놀러간 사람, 살던 사람(김종태,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대한민국 구석구석(한국관광공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