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병 2

병풍 1 - 계병(稧屛)

조선시대의 서화(書畵)는 족자, 두루마리, 첩(帖), 병(屛) 등의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어왔다. 병(屛)은 후세에 와서 병풍(屛風)으로 불리면서 바람을 막는 용도가 더 강조되었지만, 원래는 중국 주나라의 천자가 높이 8척의 판에 자루가 없는 여러 개의 도끼를 그리거나 수놓아 뒷벽을 장식한 부의(斧扆)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의 왕 어좌 뒤에 배설되었던 일월오봉병(日月五峯屛)처럼 장엄(莊嚴)장식용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병(屛)이 서화의 장황(粧潢) 형식의 하나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제작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아무래도 다른 형태보다는 제작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조선 초기에는 주로 왕실에서 제례나 혼례 또는 제왕 교육용으로 제작되었다. 하지만 왕실에서조차 병풍을 사치의 대상으로 생각했..

우리 옛 병풍 2020.12.02

헌종가례진하계병

1844년 10월 헌종이 계비 효정왕후(孝定王后, 1831~1903)를 맞이하여 가례를 올린 뒤 진하를 받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헌종은 1843년 효현왕후(孝顯王后)가 죽자 이듬해 10월 18일 익풍부원군 홍재룡(洪在龍)의 딸을 계비로 책봉하고 21일에 친영례(親迎禮)를 치렀다. 헌종은 가례(嘉禮) 의식을 모두 마친 이튿날인 10월 22일 경희궁 숭정전(崇政殿)에 나아가 교서(敎書)를 반포하고 문무백관의 진하를 받았는데 ‘헌종가례진하계병’은 바로 이 진하례 장면을 그린 것이다. 진하(陳賀)는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조신(朝臣)들이 모여 임금에게 나아가 축하하는 일을 말한다. ▶친영례(親迎禮) : 『의례』·『예기』 등에 수록되어 있는 중국의 혼인의례인 6례 중 하나로 신랑이 신부집에서 신부를 맞아와 자신..

우리 옛 그림 2020.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