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북일기(赴北日記)」에는 기생, 주탕, 방직기라는 호칭이 모두 등장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들을 모두 통틀어 창기(娼妓)로 부르는 예가 많다. 하지만, 부북일기(赴北日記)」에 이렇게 호칭을 나눈 것을 보면 이들 사이에는 지금 우리가 다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차이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정약용은 『목민심서』에 “관비(官婢)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기생(妓生)인데 일명 주탕(酒湯)이라고도 하고, 하나는 비자(婢子)인데 일명 수급(水汲)이라고도 한다.”고 하여, 기생과 주탕을 같은 개념으로 취급하였다. 반면 《조선왕조실록》에는 연산군이 흥청의 숫자를 채우는 일로 고민할 때 “평안도 풍속에 자색이 있는 관비(官婢)를 주탕(酒湯)이라 하는데, 혹은 노래 혹은 음률을 알아 또한 간택할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