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주도 2

이경윤 산수인물화첩 1

낙파(駱坡)이경윤(李慶胤, 1545 ~ 1611)은 종실화가이다. 성종의 8남(男)인 익양군(益陽君) 이회(李褱)의 종증손(從曾孫)으로, 종친계(宗親階)에 의하여 정3품 학림정(鶴林正)에 봉해졌지만 따로 벼슬은 하지 않았다. 그런 이경윤이 여기(餘技)로 그린 그림들은 당대부터 뛰어나다는 평을 받으면서 화명(畵名)을 얻었다. 당대 절파화풍(浙派畵風)의 대가로 꼽히던 김시(金禔)와의 교유를 통하여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경윤의 그림이 단아하면서 깨끗하고 욕심 없는 담박함이 드러나는 높은 화격(畵格)의 작품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면서, 이경윤이 죽은 뒤에도 많은 이들이 그의 그림에 관심을 갖고 찾게 만들었다. 아울러 동시대와 그 뒤를 세대의 문사들이 그의 그림에 시와 글을 남겼다. 전하는 ..

우리 옛 그림 2021.10.06

종실(宗室)화가 - 이경윤 이징 1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서화가였던 강희안(姜希顔, 1417 ~ 1464)은 동생 강희맹(姜希孟)과 더불어 일찍부터 시서화에 뛰어난 재주를 보여, 세종 때 안견(安堅), 최경(崔涇)과 더불어 삼절(三絶)이라 불렸던 인물이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글씨와 그림은 천한 재주이니 단지 후세에 흘러 전하여서 이름을 욕되게 할 따름이다[書畵賤技 祗流傳後世 以辱名耳]“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100여년 뒤에 왕실 종친 집안이 갑자기 글과 그림으로 이름을 얻게 되는 일이 일어났다. 이경윤(李慶胤, 1545 ~ 1611)은 성종의 8남(男)인 익양군(益陽君) 이회(李褱)의 종증손(從曾孫)이다. 종친(宗親)이라는 신분 때문에 벼슬은 하지 않았고, 왕실 왕자군(王子君)의 증손에게 내려지는 학림수(鶴林守)를 제수 받았으며..

우리 옛 그림 2020.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