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밀대 2

관서십경도(關西十景圖) 2

부벽루(浮碧樓)는 평양성(平壤城), 그 중에서도 북성(北城)의 대동강 쪽에 있는 누각이다.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조선시대의 3대 누정으로 꼽혀왔다. 부벽루에 올라서면 유유히 흐르는 대동강과 강 건너로 펼쳐진 들판에 이어 멀리로 크고 작은 산들이 보이는 전경이 매우 아름다웠다고 한다. 특히 부벽루에서 밤에 동쪽에서 떠오르는 달구경은 ‘부벽완월(浮壁玩月)’이라 하여 일찍부터 ‘평양8경’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부벽루는 고구려 광개토왕 때인 393년에 영명사(永明寺)의 부속 건물로 세워졌는데 당시의 이름은 ‘영명루(永明樓)’였다고 한다. 고려 때인 12세기 들어 ‘거울같이 맑고 푸른 물이 감돌아 흐르는 청류벽(淸流壁) 위에 둥실 떠 있는 듯한 누정’이라는 의미의 부벽루(浮碧樓)로 이름이 바뀌었다...

우리 옛 그림 2021.08.31

병풍 35 - 평양성도(平壤城圖) 2

평양은 조선시대 한성 다음의 제2도시였다. 평양은 조선시대 평안도(平安道)의 군사와 재정을 관할하는 감영(監營)이 있어 물산(物産)이 모이는 중심지였고, 중국으로 오고가는 사행길의 핵심 도시로써 중국과의 국제무역으로 경제유통이 가장 활발한 도시이기도 했다. ‘평안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 평안감사는 조선시대 가장 선망되는 관직이었다. 감사 중에서도 평안감사가 중시되고 선호된 이유는 병자호란 이후 북방의 방어를 위한 국가적 지원이 평안도가 다른 변방(邊方)에 비해 넉넉한 이유도 있었다. 전쟁에 대비한 군비(軍費)로 모아두었던 물자가 전쟁의 위협이 줄어들면서 평안도로 흡수됨으로써 평안도는 조선의 어느 곳보다 재정이 풍부한 지역이 된 것이다. 이러한 평안도의 행정(行政), 사법(司法..

우리 옛 병풍 2021.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