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의선사 3

차(茶)와 신선

거리엔 cafe가 넘쳐나고 길을 걷는 젊은이들의 손에는 저마다 커피 잔이 하나씩 들려있다. 잠이 안 온다는 이유로 커피를 멀리하던 사람들이 꽤 있었던 때가 불과 얼마 전이다. 그런데 이제는 하루에 한잔이라도 카페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처럼 느껴지는 분위기다. 커피가 없던 시절, 우리의 선조들은 무엇을 마셨을까 생각하면 언뜻 차(茶)를 떠올리고 뒤이어 율무차, 인삼차, 쌍화차 같은 이름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율무차나 인삼차, 쌍화차는 차(茶)가 아니라 탕(湯)에 속했던 것이다. 차란 엄밀한 의미에서 차나무 잎을 우려내거나 끓여낸 물을 가리킨다. 차는 우리나라에 삼국시대 말부터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차와 술, 소채, 과일, 약 등의 일을 주관하는 관서(官署)로 ..

우리 옛 그림 2021.10.28

추사 김정희 48 - 절필(絶筆)

1856년 10월. 추사는 그때도 봉은사에 있었다. 당시 봉은사에서는 남호(南湖), 영기(永奇)스님이「화엄경」, 정확하게는「화엄경수소연의본(華嚴經隨疎演義本)」80권을 직접 손으로 베껴 쓰고 이를 목판으로 찍어 인출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화엄경판이 마침내 완성되어 경판전을 짓고 보관하게 되어 그 현판 글씨를 추사에게 부탁하였다. 그때가 9월말이었다. 추사는 병든 몸임에도 불구하고 글자 하나의 크기가 어린아이 몸통만한 대자(大字)로 두 글자를 완성했다. 그리고 옆에 낙관하기를 ‘칠십일과 병중작(七十一果 病中作)’이라고 했다. 이 글씨는 결국 추사의 절필(絶筆)을 고하는 작품이 되었다. 유홍준 박사는 이 글씨가 추사체의 졸(拙)함이 극에 달한 것이라 했다. 어린아이 글씨 같기도 하고 지팡이로 땅..

추사 김정희 2018.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