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외소거 2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 2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의 고사인물도 8점은 등장 인물을 산수 배경과 자연스럽게 조화시키는 정선(鄭敾) 방식의 고사인물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는 평을 얻고 있다. 조선시대 고사인물화가 대개 중국 성현과 은자들을 광범하게 포괄하는 양상과 달리 정선이 송(宋)나라 때의 유학자에 국한시켜 그린 점은 이례적이다. 화첩의 고사인물도는 비단 바탕에 수묵담채로 그려졌고 화폭의 크기는 세로 30.3㎝, 가로 20.3㎝으로 해악팔경보다는 큰 편이다. 고사인물도들은 모두 송대(宋代) 유학자 8명의 행적이나 시문(詩文)을 화재(畵材)로 삼은 것이다. 첫 번째 은 성리학의 기초를 닦아 정호(程顥)와 정이(程頤) 형제에게 학문을 전수한 주돈이(周敦頤, 1017 ~ 1073)에 대한 것이다. 주희(朱熹)가 도학(道..

우리 옛 그림 2021.10.12

소옹 고사도(古事圖)

이 소옹의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주제로 한 고사도(古事圖)라면, <화외소거(花外小車)>는 소옹 본인에 대한 고사인물도이다. 이 화제(畵題)에 얽힌 고사(古事)는 이렇다. 소옹은 나이 54세 때에 부친이 죽자 그동안 살던 곳에서 낙양의 천진교(天津橋)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였다. 그 때에 사마광(司馬光)을 비롯한 그의 벗들이 돈을 모아 그에게 집과 농토를 마련하여 주었다 한다. 사마광 (司馬光:1019~1086)은 중국에서 가장 뛰어난 역사서로 꼽히는『자치통감(資治通鑑』을 편찬한 북송 (北宋)때의 정치가이자 학자다. 당시에도 명사였다. 그런 사마광이 어느 날 소옹과 자신의 별서(別墅)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그래서 사마광은 술상을 준비하고 기다리는데 소옹이 나타나질 않았다. 기다리다 끝내 소옹이 오지 ..

우리 옛 그림 2019.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