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승희 3

조선의 기생 22 - 기방 풍속

조선 전기에는 기생의 거처를 창가(娼家)라고 불렀다. 그저 기생이 유숙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등장한 기방(妓房)은 기생의 거처인 동시에 영업 공간이었다. 기방의 기생은 의녀와 침비 뿐만 아니라 지방에서 여러 가지 사유로 한양에 올라왔다가 내려가지 않은 향기(鄕妓)들도 있었다. 이는 조선 후기의 국문소설「게우사(誡愚詞)」의 주인공 무숙이와 평양 기생 의양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고, 또 다른 조선 후기의 한문단편집인 「차산필담(此山筆談)」의 이란 야담에도 나타난다. 종로(鐘路)의 큰 기방에 있는 기생이 자신을 “저는 본래 평양 교방(敎坊)의 일등이었습니다. 개성의 대상(大商) 백유성(白惟性)이 만금을 투자하여 이 누대를 꾸미고 저를 술청에 앉혀두었습니다.”라고 소개하는 대목이다. 조선시대..

우리 옛 뿌리 2021.09.01

어을우동(於乙宇同)

1985년 이장호가 감독하고 이보희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 이래 전모(氈帽) 쓴 기생 차림의 여인에다 어우동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경우가 허다한데, 어우동은 기생이 아니었다. 버젓한 양반 가문 출신에다 왕실 가문인 종친(宗親)의 부인이었다. 어우동의 아버지 박윤창(朴允昌)은 승문원 지사(承文院知事)라고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승문원(承文院)은 조선시대 사대교린(事大交隣)에 관한 문서를 관장하기 위해 설치했던 관서로, 지사(知事)는 정3품 관직이다. 그럼에도 조선시대에 권응인{權應仁)이 지은 시화 및 일화집인 「송계만록(松溪漫錄」에서 조차 어우동에 대하여 “호서(湖西)의 창(娼)으로 농부의 딸이었으나 단정하지 않아, 그 시가 뛰어나나 싣지 않는다.”고 했다. 권응인이 명종 때의 인물인데, 이때부터도 ..

우리 옛 뿌리 2021.08.30

완장의 올바른 사용법

지금 정치인들과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검사, 판사는 물론 하다못해 기더기까지 꼽사리를 껴서 자신들이 갖고 있는 그 알량한 지위를 발판으로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데 열중인 꼴을 보노라면, 예전 TV에서 보았던 ‘완장’이라는 드라마가 연상된다. 수준이 딱 그 수준이다. 거기다 늘 자신들 밥줄 지키느라 양심은 뒷전에 두고 사는 주제에 입만 열면 국민과 공정, 정의를 들먹이는 꼬라지는 눈꼴이 시어서 못 봐줄 지경이다. 유교 국가였던 조선에서, 간통죄는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결코 가볍지 않은 범죄였다. 현대에서야 개인적 문제에 불과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자칫 국가와 사회의 기본 덕목인 강상(綱常)이 무너질 수도 있는 일이라 이는 조정에서까지 신경 써야 하는 문제이기도 했다. [《세종실록》 세종 15년(1433년) 1..

백가쟁명 2021.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