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권 2

김두량 전원행렵도(田園行獵圖) 1

김두량(金斗樑, 1696 ~ 1763)은 조선 후기의 도화서 화원으로, 정선보다 20년 늦고 김홍도 보다는 50년 빠른 시기에 활동했다. 외조부 함제건(悌健)을 비롯하여 부친 김효강(金孝綱)과 김두량의 형제와 아들, 조카까지 화원을 지냈던 조선 후기의 대표적 화원가문 출신이었다. 문인화가였던 윤두서에게 그림을 배웠다고 하며, 22세 때인 1717년에 통영의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에 화원으로 배속되면서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하여 30세부터는 본격적으로 궁중의 여러 화사(畵事)에 참여하였다. 김두량은 영조에게서 남리(南里)라는 호를 하사받을 정도로 각별한 신임을 받으면서 실질적으로 도화서(圖畵署)의 실무를 관장하는 직위인 종6품 별제(別提)에까지 올랐다. 김두량은 산수, 인물, 풍속, 영모(翎毛) 등 ..

우리 옛 그림 2021.11.09

이인문 - 강산무진도

이인문(李寅文, 1745 ~ 1824 이후)은 김홍도(金弘道)와 동갑이자 같은 도화서(圖畫署) 화원으로 서로간의 친분도 매우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인문은 문인화풍과 화원풍의 필치를 모두 체득하여 이를 혼합한 특유의 화풍을 이룩하였고 산수, 포도, 영모(翎毛), 도석인물(道釋人物) 등 다방면에 걸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였으며 특히 송림(松林)을 즐겨 그려 이 방면에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많은 호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館道人)’이라는 호를 즐겨 사용한 것을 보면 ‘늙은 소나무와 흐르는 물’이 있는 풍경을 진정으로 좋아했던 모양이다. 김홍도와 이인문보다 약 25년 아래인 신위(申緯, 1769 ~ 1847)는 자신의 시집인 「경수당전고(警修堂全藁)」에서 ..

우리 옛 그림 2020.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