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황은 자신이 산수와 난, 죽을 잘 그린다고 했다. 그는 “그림에서 전신사조(傳神寫照)의 원리가 작용하는 것은 산수뿐 아니라 고목죽석(枯木竹石)이나 화훼사생(花卉寫生)도 마찬가지”라고 하였다. 화훼, 사군자가 문인화의 소재로서 그 정신이나 원리에 있어 산수화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강세황이 평생을 즐겨 그린 화훼와 사군자는 중기에 이르러 다양하게 꽃피운다. 강세황은 다양한 소재를 선택하고 여기에 채색을 구사하는 새로운 시도로 초충화훼(草蟲花卉)를 그렸다.
1627년 중국에서 간행된 『십죽재서화보(十竹齋書畵譜)』는 명나라의 서화가 호정언이 채색 판화제작기술로 펴낸 화보집인데 중국판화사에서 최고봉으로 평가 받던 화첩이다. 1788년 76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강세황은 이 화보를 따라 그려보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강세황은 화훼, 사군자에 괴석(怪石)을 접목시키기도 하고 괴석만을 그리기도 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표암첩豹菴帖>은 총 2권에 26폭의 그림이 실려 있다. 산수인물화가 7폭, 사군자가 10폭, 화조화훼도가 9폭 각각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 강세황의 그림이 5점, 심사정의 그림이 14점 수록되어 있다. 그 중에 난을 채색한 그림이나 무를 그린 그림 같이 특이한 소재와 특이한 시도를 한 그림들이 있다.
참고 및 인용 : 한국 역대 서화가 사전(2011. 국립문화재연구소),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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