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황은 사군자를 그릴 때 화보(畵譜)와 옛 그림을 많이 공부했다고 한다. 그는 조선에서 그려진 난(蘭) 그림들이 뛰어나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묵란(墨蘭)에 대해서는 더욱 이름 있는 사람이 없다. 대체로 우리나라에는 옛적부터 난(蘭)이라고 하는 것이 없다.
그림을 보고 더러 모사해 보지만 진짜 난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 정신을 옮기고 실물을 그대로 그릴[전신사조(傳神寫照)] 수가 없다. 옛적에 좋은 화보가 있지마는 그것도 우리나라에 전한 것이 없다. 또 화보 가운데 두어 폭을 옮겨
모사하였는데, 혹 이로 인하여 오묘한 것을 깨달을 수 있겠는가. 십죽재화보에 난보가 있다. 지금 여기에다 옮겨서
그렸다. 그러나 난을 그리려 하는 사람이 어떻게 이것만 가지고 그 오묘한 경지에 이를 수 있겠는가. 반드시 난과 죽의 참 모양을 익히 보고, 널리 옛사람들의 유적을 보고, 겸하여 모사하는 공부를 오랫동안 쌓아야만 비로소 성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공부하는 사람의 지식이 깊고 얕음과 필력의 강약에도 관계된다.
그것이 붓장난에 불과하지마는 이렇게 어려우니 누가 학문하는 공부를 폐지하며, 문장을 짓는 과업을 버리고, 쓸데없는 조그마한 예능에다 정신을 소모하며 시간을 허비할 수 있으랴.“
‘난에 관한 한, 조선에 명필이 없다’고 하는 이유가 조금은 이해될 듯하다. 강세황은 매(梅)와 죽(竹)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했다. “그림을 그리는 데는 배치와 메우는 것이 걱정인데, 매화와 대를 드리는 데는 더욱 공령쇄락(空靈洒落)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죽(竹)에에 대해서는 “내 그린 지 수십 년에 끝까지 깨달음이 없었는데, 그 창 앞에 비치는 달그림자를 보고 그려냈더니 약간 진전이 있는 것을 알겠다.”고 하였다.
그는 72세 때의 중국 사행 중에도 중국 화가들의 대나무 그림이 조선 그림보다 더 좋은 이유가 혹시 종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여 중국 종이에 직접 대나무 그림을 그려보기도 했다 한다. 고령에도 그의 그림에 대한 열정은 변함이 없었다.
▶공령쇄락(空靈洒落) : 공령(空靈)은 동양화에서 여백 처리로 신묘한 뜻을 나타내는 것을 말하고 쇄락(洒落)은 초연하고 대범하여 시원스럽다는 의미다. |
담채로 그린 강세황의 대나무 그림 역시 또 다른 시도였을 것이다.
강세황은 대각선을 중심축으로 사선과 여백을 밀도 있게 운용하는 감각이 뛰어나고 특히 사군자를 다룰 때 그 저력이
더욱 잘 나타난다는 평을 받는다. 그래서 제자인 김홍도가 그림에 남다른 구도 감각을 보인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강세황 이전에는 사군자라 하여도 매난국죽을 한 벌로 모두 그리지는 않았는데 이를 처음 이루어낸 것 역시
강세황이라고 한다. 그랬기 때문에 강세황이 이를 함께 그릴 때는 매난국죽의 순서가 정해지지도 않은 상태라 아래
강세황의 <사군자병풍(四君子屛風)>은 매죽국난의 순서로 그려졌고 맨 마지막인 난 그림에 강세황의 관지가 있다.
후기로 가면서 강세황은 묵난(墨蘭)과 묵죽(墨竹)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위 <난죽도(蘭竹圖)>는 강세황이 세상을 뜨기 1년 전인 1790년, 78세에 평생의 필력을 다 쏟아 부은 강세황 사군자의 대표작이라고 소개하는 글이 많은데, 정작 소장하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전(傳) 강세황’ 작품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 명확한 진위는 밝혀지지 않은 것 같다.
강세황은 말년에 남산 밑에 살았는데 거처하는 곳이 정결하였으며, 간혹 밝은 용모에 백발을 휘날리며 소나무와 참나무 사이를 거닐기도 하여, 정조는 이런 강세황을 두고 "풍채가 고상하여 늙은 신선도와 같다."라고 하였다 한다.
1791년 정월, 병중의 강세황은 붓을 달라 하여 "푸른 소나무는 늙지 않고 학과 사슴이 일제히 운다[蒼松不老 鶴鹿齊鳴]." 라는 여덟 자를 남기고 생을 마감하였다.
참고 및 인용 : 한국 역대 서화가 사전(2011. 국립문화재연구소), 한국의 미술가(2006. 변영섭외 11인),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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