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김하종 해산도첩 5

從心所欲 2020. 11. 2. 08:51

이제《해산도첩》의 남은 그림은 설악산 지역으로 첩의 순서에는 양양의 낙산사가 제일 먼저 나온다.

 

[《해산도첩(海山圖帖)》中 <낙산사(洛山寺)>]

 

[김홍도 《금강사군첩(金剛四郡帖)》中 <낙산사>]

 

[정선, 《해악도병(海嶽圖屛)》中 <낙산사>, 지본담채, 56 x 42.8cm, 간송미술관]

 

계조굴(繼祖窟)은 울산바위와 그 아래에 목탁바위를 뚫고 석굴사원으로 지은 절인 계조암(繼祖庵)을 그린 것이다. 계조암은 바위 속에 법당이 들어있고 그 앞에는 지금도 유명한 흔들바위가 있다.

 

[《해산도첩(海山圖帖)》中 <계조굴(繼祖窟)>]

 

[김홍도 《금강사군첩(金剛四郡帖)》中 <계조굴>]

 

<설악쌍폭>은 내설악 지역의 백담사에서 대청봉으로 가는 구곡담 계곡에 있는 쌍용폭포(雙龍瀑布)를 그린 것으로 보인다. 쌍용폭포는 지금도 보통 쌍폭(雙瀑)이라 부른다고 한다. 두 마리의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모양이라는 설명인데, 여폭(女瀑)이라고도 하는 좌폭(左瀑)은 22m이고, 남폭(男瀑)이라는 우폭(右瀑)은 46m라 한다.

 

[《해산도첩(海山圖帖)》中 <설악쌍폭(雪嶽雙瀑)>]

 

김하종은 이어 설악산 전경과 설악경천벽을 그리는 것으로 《해산도첩(海山圖帖)》의 그림을 마감했다. <설악경천벽>은 설악산의 어떤 절벽 기경을 그린 것 같은데 장소는 알 수 없다. 김하종은 이 그림 왼쪽 구석에 ‘설호산인김하종제(雪壺山人金夏鍾製)’라는 관지를 남겼다. 김하종은 유당(蕤堂), 이당(怡堂), 유재(蕤齋)라는 호와 함께 설호산인(雪壺山人)이라는 호도 썼다.

 

[《해산도첩(海山圖帖)》中 <설악전경(雪嶽 全景>]

 

 

[《해산도첩(海山圖帖)》中 <설악경천벽(雪嶽擎天壁)>]

 

김하종은 1830년의 순조어진, 1852년 철종어진, 1862년의 철종어진 등 어진제작에만 세 번이나 화사로 참여했고 그 외에 철종과 철인왕후의 가례 의궤도[哲宗哲仁后嘉禮都監儀軌圖 ]제작에도 참여했다. 그의 몰년(沒年)은 확인되지 않으나 1875년 순종의 왕세자 책봉 의궤[純宗王世子受冊時冊禮都監儀軌] 제작에 참여하여 반차도를 그렸다는 것을 보면 그가 80세가 넘어서까지 활동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1865년에는 수원 유수(留守) 이유원(李裕元)과 금강산, 관동지역, 설악산을 여행하면서 《풍악권(楓嶽卷)》을 그렸다. 70을 넘긴 김하종의 이때 그림은 20대의 《해산도첩》과는 달리 정선, 심사정, 강세황, 김홍도, 김응환 등 18세기 대가들의 진경산수화풍을 골고루 참조하면서 다소 보수적인 경향을 추구하였다고 한다. 유홍준 교수는 1991년 뉴욕 쏘더비(Sotheby) 경매전에 김하종의 풍악도권 58폭이 출품된 바 있다고 하였는데 그 이후 작품의 행방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참고 및 인용 : 한국 역대 서화가 사전(송희경, 2011, 국립문화재연구소),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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