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목민심서 1 - 목민하고 싶으나 할 수 없어 심서라 했다.

從心所欲 2021. 2. 17. 06:55

『목민심서(牧民心書)』는 정약용(丁若鏞)이 전라도 강진에서의 18년 귀양살이를 끝내던 1818년에 완성한 책으로, 지방 수령들이 치민(治民)할 때 지켜야하는 도리를 다룬 책이다. ‘다산 정약용’하면 떠오를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 거의 모두에게 귀에 익은 책이름이지만 실제로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은 중국소설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보다 적을 듯하다.

책의 내용이 때 지난 ‘공직자론’처럼 생각될 수도 있지만, 정약용의 철학과 가치관을 살필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삶에 관심이 있다면 당시의 풍속도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라 생각된다.

 

[김홍도필풍속도(金弘道筆風俗圖) 8점 中 1, 1770년작, 지본담채, 121.8 x 39.4cm, 국립중앙박물관]

 

 

●서(序).

자서(自序)

 

옛날에 순(舜)임금은 요(堯)임금의 뒤를 이어 12목(牧)에게 물어, 그들로 하여금 목민(牧民)하게 하였고, 주문왕(周文王)이 정치를 할 제, 이에 사목(司牧)을 세워 목부(牧夫)로 삼았으며, 맹자(孟子)는 평륙(平陸)으로 가서 추목(芻牧)하는 것으로 목민함에 비유하였으니, 이로 미루어 보면 양민(養民)함을 목(牧)이라 한 것은 성현이 남긴 뜻이다.

▶12목(牧) : 12주(州)의 제후(諸侯) 즉 지방장관.

▶사목(司牧), 목부(牧夫) : 사목(司牧)은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 즉 지방장관, 목부(牧夫)는 가축을 사육하는 사람. 백성을 부양하는 수령을 목부에 비유한 것

▶맹자(孟子)는 평륙(平陸)으로 가서 추목(芻牧)... : 맹자(孟子)가 제(齊)나라 고을인 평륙(平陸)의 고을 수령에게 ‘가축을 사육한다’는 뜻의 추목(芻牧)을 ‘백성을 다스리고 기르는’ 목민(牧民)에 비유한 것

 

성현의 가르침에는 원래 두 가지 길이 있는데, 하나는 사도(司徒)가 만백성을 가르쳐 각기 수신(修身)하도록 하고, 또 하나는 태학(太學)에서 국자(國子)를 가르쳐 각각 수신하고 치민(治民)하도록 하는 것이니, 치민하는 것이 바로 목민인 것이다. 그렇다면 군자(君子)의 학은 수신이 그 반이요, 반은 목민인 것이다. 성인의 시대가 이미 오래되었고 그 말도 없어져서 그 도가 점점 어두워졌다. 요즈음의 사목(司牧)이란 자들은 이익을 추구하는 데만 급급하고 어떻게 목민해야 할 것인가는 모르고 있다. 이 때문에 백성들은 곤궁하고 병들어 줄을 지어 진 구렁이에 떨어져 죽는데도 그들 사목된 자들은 바야흐로 고운 옷과 맛있는 음식에 자기만 살찌고 있으니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사도(司徒) : 주나라 때 육경(六卿)의 하나로, 예교(禮敎)로 백성을 교화시키는 일을 담당하였다는 관직

▶태학(太學) : 왕조시대에 왕이 세운 최고의 학부(學府)

▶국자(國子) : 공경대부(公卿大夫)의 자제

 

나의 선친께서 성조(聖朝)의 지우(知遇)를 받아, 두 현의 현감, 한 군의 군수, 한 부의 도호부사(都護府使), 한 주의 목사를 지냈는데, 모두 치적이 있었다. 비록 나의 불초로도 따라다니면서 배워서 다소간 들은 바가 있었고, 따라다니면서 보고는 다소간 깨달은 바도 있었으며, 뒤에 수령이 되어 이를 시험해 볼 때에도 다소간 증험이 있었지만, 이미 유락(流落)된 몸이 되어 이를 쓸 곳조차 없어졌다.

먼 변방에서 귀양살이한 지 18년 동안에 오경(五經)ㆍ사서(四書)를 되풀이 연구하여 수기(修己)의 학을 공부하였다. 다시 백성을 다스림은 학문의 반이라 하여, 이에 23사(史)와 우리나라의 여러 역사 및 자집(子集) 등 여러 서적을 가져다가 옛날 사목이 목민한 유적을 골라, 세밀히 고찰하여 이를 분류한 다음, 차례로 편집하였다. 남쪽의 시골은 전답의 조세(租稅)가 나오는 곳이라, 간악하고 교활한 아전들이 농단하여 그에 따른 여러 가지 폐단이 어지럽게 일어났는데, 내 처지가 비천(卑賤)하므로 들은 것이 매우 상세하였다. 이것 또한 그대로 분류하여 대강 기록하고 나의 천박한 소견을 붙였다.

▶성조(聖朝) : 당대 왕조(王朝)를 백성(百姓)이 높이어 일컫는 말

▶지우(知遇) : 재주를 알아보아 대접함.

▶귀양살이한 지 18년 : 순조 1년(1801) 황사영 백서사건(黃嗣永帛書事件)으로 강진(康津)에 유배(流配)되어 순조 18년(1818)까지의 기간

▶23사(史) : 중국 역사서 23종.

▶자집(子集) : 각종 책과 시문집(詩文集)

 

[김홍도필풍속도(金弘道筆風俗圖) 8점 中 1 부분]

 

모두 12편으로 되었는데, 1은 부임(赴任), 2는 율기(律己), 3은 봉공(奉公), 4는 애민(愛民)이요, 그 다음 차례차례로 육전(六典)이 있고, 11은 진황(賑荒), 12는 해관(解官)이다. 12편이 각각 6조(條)씩 나뉘었으니 모두 72조가 된다. 혹, 몇 조를 합하여 한 권을 만들기도 하고, 혹 한 조를 나누어 몇 권을 만들기도 하였으니, 통틀어 48권으로 한 부(部)가 되었다. 비록 시대에 따르고 풍습에 순응하여 위로 선왕(先王)의 헌장(憲章)에 부합되지는 못하였지만, 목민하는 일에 있어서는 조례가 갖추어졌다.

▶부임(赴任) : 임무(任務)를 받아 근무(勤務)할 곳으로 감

▶율기(律己) : 자기자신(自己自身)을 다스림

▶진황(賑荒) : 구휼(救恤)

▶해관(解官) : 관직을 물러남

▶선왕(先王)의 헌장(憲章) : 조선시대의 국가 법령

 

고려 말에 비로소 오사(五事)로 수령들을 고과(考課)하였고, 국조(國朝)에서는 그대로 하다가 뒤에 칠사(七事)로 늘렸는데, 소위 수령이 해야 할 대략만을 들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수령이라는 직책은 관장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여러 조목을 열거하여도 오히려 직책을 다하지 못할까 두려운데, 하물며 스스로 실행하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 책은 첫머리의 부임(赴任)과 맨 끝의 해관(解官) 2편을 제외한 나머지 10편에 들어 있는 것만 해도 60조나 되니, 진실로 어진 수령이 있어 제 직분을 다할 것을 생각한다면 아마도 방법에 어둡지는 않을 것이다.

▶오사(五事) : 수령오사(守令五事)의 준말로, 수령이 힘써야 할 다섯 가지 일. 고려 우왕(禑王) 원년(1375)에는 전야가 넓어지고[田野闢], 호구가 늘고[戶口增], 부역이 고르게 되고[賦役均], 민사의 소송이 간편하고[詞訟簡], 도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盗賊息] 등 다섯 가지. 창왕(昌王) 원년(1388)에는 ‘도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 대신 ‘학교를 일으키는 것[學校興]’으로 바뀌었다.

▶칠사(七事) : 수령칠사(守令七事)의 준말. 농상(農桑)이 진흥되고[農桑興], 호구가 늘고[戶口增], 학교를 일으키고[學校興], 군정이 잘 되고[軍政修], 부역이 고르게 되고[賦役均], 민사의 소송이 간편하고[詞訟簡], 간사하고 교활한 풍속이 없어지게 하는 것[姦猾息] 등 일곱 가지. 《經國大典 吏典 考課》

 

옛날에 부염(傅琰)은 《이현보(理縣譜)》를 지었고, 유이(劉彝)는 《법범(法範)》을 지었으며, 왕소(王素)에게는 《독단(獨斷)》이, 장영(張詠)에게는 《계민집(戒民集)》이 있으며, 진덕수(眞德秀)는 《정경(政經)》을, 호태초(胡太初)는 《서언(緖言)》을, 정한봉(鄭漢奉)은 〈환택편(宦澤篇)〉을 지었으니, 모두 소위 목민에 관한 서적인 것이다.

이제 그런 서적들은 거의가 전해 오지 않고 음란한 말과 기이한 구절만이 일세를 횡행하니, 내 책인들 어찌 전해질 수 있겠는가.

그러나 《주역(周易)》 〈대축(大畜)〉에 “전 사람의 말이나 지나간 행실을 많이 알아서 자기의 덕을 기른다.” 하였으니, 이는 본디 나의 덕을 기르기 위한 것이지, 하필 꼭 목민하기 위해서만 이겠는가? ‘심서(心書)’라 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면, 목민할 마음은 있으나 몸소 실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이름한 것이다.

 

당저(當宁) 21년인 신사년(1821) 늦봄에 열수(洌水) 정약용(丁若鏞)이 서(序)하다.

▶당저(當宁) : 당시의 임금. 여기서는 순조(純祖)

 

[김홍도필풍속도(金弘道筆風俗圖) 8점 中 1 부분]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