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목민심서 3 - 관직을 얻었다고 함부로 재물을 쓰지 마라.

從心所欲 2021. 2. 20. 06:12

[김홍도필풍속도(金弘道筆風俗圖) 8점 中 3, 지본담채, 121.8 x 39.4cm, 국립중앙박물관]

 

●부임(赴任) 제1조 제배(除拜) 2.

임명된 처음에 재물을 함부로 나누어 주어서는 안 된다.

(除拜之初 財不可濫施也)

 

 

수령의 봉록은 달로 배정되지 않음이 없고, 그 매달의 액수를 자세히 분석해 보면 날로 배정되지 않음이 없다. 무릇 달을 당기거나 날을 당겨서 재물을 쓰는 것은 모두 써서는 안 될 재물을 쓰게 되는 셈이다. 써서는 안 될 재물을 쓰는 것은 탐욕할 조짐이다. 수령이 도임하기 전에 갈리는 자는 봉록 분배에 참여할 수 없다. 자신이 아직 서울을 떠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 고을 재물을 쓸 수 있겠는가. 부득이한 자에게는 주되, 그 외에는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이제 부임하는 수령이 임금에게 하직하는 날에 액례(掖隷) - <대전별감(大殿別監)> - 원례(院隷) - <정원사령(政院使令)> - 들이 예전(例錢)을 내라고 하는데, 명목은 궐내행하(闕內行下)라 한다. 많으면 수백 냥이요 적어도 50~60냥은 된다. 음관(蔭官)이나 무관이나 문벌이 높지 못한 시골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주는 돈이 제 욕심에 차지 않을 때는, 이들이 드러내 놓고 욕지거리하며, 옷소매를 끌어당기기도 하니 형언할 수 없는 창피를 당하게 된다. 선조(先朝)에는 일찍이 이를 엄금하여, 승정원(承政院)에서 그 액수를 참작하여 정하고 가감하지 못하게 하였다. 욕지거리는 조금 줄어들었으나 그 거두고 토색하는 것은 공물(貢物)의 정액(正額)과 다름이 없으니, 크게 예(禮)가 아니다.

▶액례(掖隷) : 왕명의 전달 및 임금이 쓰는 붓과 벼루의 보관, 궁중의 자물쇠 관리, 대궐 뜰의 설비 등을 맡은 관청인 액정서(掖庭署)에 딸린 이원(吏員), 또는 하례(下隷). 이들 가운데 임금이 거하는 대전(大殿)에 소속된 7 ~ 9품의 별감(別監)을 대전별감(大殿別監)이라 한다. 임금의 궁(宮)내외 거둥 때에는 어가(御駕) 옆에서 시위(侍衛), 봉도(奉導)를 하고 평상시에는 세수간(洗手間)이나 무수리간[水賜間]에서의 시중을 담당하였다.

▶원례(院隷) : 승정원(承政院)에서 심부름하던 하인. 정원사령(政院使令)도 같은 의미다.

▶예전(例錢) : 새로 임명된 수령(守令)이 대궐에 나아가 임금에게 하직 인사를 드릴 때에, 액례(掖隷),원례(院隷)들에게 의례로 주는 돈. 궐내행하(闕內行下).

▶음관(蔭官) : 공신 및 고위 관원의 자제로서 그 부조(父祖)의 공으로 과거를 거치지 않고 벼슬에 오른 관리.

 

대체로 조정에서 백성을 위하여 수령을 보낼 때에는 비용을 절약하여 백성을 사랑하도록 타일러야 할 것인데, 먼저 액례(掖隷)와 원례(院隷)를 풀어놓아 명목 없는 돈을 토색하여, 기생을 끼고 모여서 술추렴하거나 거문고를 타고 저[笛]를 불며 노는 비용에 충당하게 하니, 이는 어떤 예(禮)인가.

근신(近臣)은 수령으로 나가는 사람에게 독촉하기를,

“그대는 풍부한 고을을 얻어 백성의 고혈(膏血)을 먹을 것이니 내례(內隷)를 대접하라.”

함은 예가 아니며,

수령은 이에 순응하여,

“내가 풍부한 고을을 얻어 백성의 고혈을 먹을 것이니 그런 비용쯤 어찌 사양하랴.”함도 예가 아니다.

더구나 고을의 관례는 각가지로 달라서, 궐내행하(闕內行下)를 민고(民庫)에서 가져다 쓰는 수가 있으니, 이런 짓들은 액례와 원례를 풀어놓아 백성을 박탈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만 이 일은 조정에서 엄금해야 할 것이지만, 수령이 되어 지방으로 나가는 사람도 전례를 따르기만 하여 예사로 수응해 줄 따름이니, 이를 장차 어찌해야 할까.

▶근신(近臣) : 임금을 측근에서 모시는 신하. 주로 왕명의 출납(出納)을 담당하는 승정원(承政院)의 승지(承旨)나 환관(宦官), 사관(史官) 등을 말함.

▶내례(內隷) : 액례와 원례

▶민고(民庫) : 조선 후기 지방관청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하여 지방민에게서 거둔 돈과 곡식을 보관해두던 창고

 

궁한 친구, 가난한 친족, 고모, 형수와 제수, 누이들 중에서 도움을 바라는 자가 있으면 응하지 않을 수 없지만, 체자(帖子) 끝에, “부임한 후 10일 만에 찾으라.”라고 써서, - 임지가 10일 길이면 10일로 한정하고, 5일 길이면 5일로 정하되 무사히 부임한 후에 시행한다. - 저리(邸吏) 즉, 경주인(京主人)에게 준다. 그 정경이 급하지 않은 자에게는 아울러 좋은 말로 약속하되, 부임한 후 한두 달 안으로 관청에서 보내겠다 하고, 저채(邸債)는 많이 져서는 안 된다. 이런 경우에는 모름지기 체자(帖子)를 먼저 주어 - 뉘댁 돈 몇 냥이라고 쓴다. - 믿고 안심하도록 해 주어야 할 것이다.

▶체자(帖子) : 증서(證書)

▶저리(邸吏) : 조선시대 서울에는 중앙과 지방의 연락기관으로서 전국 각 군현의 저사(邸舍)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를 경저(京邸)라 하였고 이 경저를 맡아 운영하는 사람을 경저리(京邸吏) 또는 경주인(京主人)이라 불렀다.

▶저채(邸債) : 경저리(京邸吏)나 감영(監營)일을 맡은 영저리(營邸吏)가 백성의 공납(貢納)을 방납(防納)함으로써 백성이 이들에게 갚아야 할 빚. 이를 구실로 향리들이 부당하게 편취하는 폐해가 심했다.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