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목민심서 4 - 처음부터 폐단을 줄여라.

從心所欲 2021. 2. 23. 07:50

[김홍도필풍속도(金弘道筆風俗圖) 8점 中 4, 지본담채, 121.8 x 39.4cm, 국립중앙박물관]

 

 

●부임(赴任) 제1조 제배(除拜) 3항.

저보(邸報)를 내려 보내는 처음에 폐단을 덜 만한 것은 덜어야 한다.

(邸報下送之初 其可省弊者 省之)

 

신영(新迎)하는 예절에, 첫째 지장(支裝)을 봉해 바치는 일, 둘째 관아 사택을 수리하는 일, 셋째 각종 기치(旗幟)를 들고 영접하는 일, 넷째 풍헌(風憲)ㆍ약정(約正) - 곧 방리(坊里)의 소임이다. - 들이 문안드리는 일, 다섯째 중도에서 문안드리는 일인데 그 폐단 중에는 생략해도 될 것이 더러 있다.

▶신영(新迎) : (수령을) 새로 맞이함.

▶저보(邸報) : 경저리(京邸吏)가 고을에 보내는 통지문.

▶지장(支裝) : 신임 수령을 맞을 때 부임지 군아에서 바치는 물건.

▶풍헌(風憲) : 면(面)이나 리(里)에서 풍기(風氣)를 바로잡고, 관리의 정사청탁(正邪淸濁)을 감찰 규탄하는 직임(職任)

▶약정(約正) : 향약(鄕約) 단체(團體)의 임원(任員)

▶방리(坊里) : 마을

 

저리(邸吏)가 고을에 사람을 보내겠다고 고하면, 수령은 그 고을 공형(公兄) - 이방(吏房)ㆍ호장(戶長) 등 - 에게 이렇게 전령(傳令)해야 할 것이다.

“지장하는 물건의 종류는 술과 마른 고기 외에는 아무 것도 보내지 말 것. 관아 청사의 수리는 분부를 받고 거행할 것. 도임하는 날에는 고을 경계선에서의 기치(旗幟)로는 영기(令旗) 두 쌍만 문졸(門卒) - 사령 - 이 받들어 잡도록 하고, 다른 것은 모두 없앨 것. 읍과 외촌을 막론하고 군졸 하나에게라도 절대로 알리지 말 것. 밑에서 제 마음대로 토색질하는 것은 각별히 엄금할 것. 외촌 풍헌(風憲)ㆍ약정(約正) 및 천총(千摠)ㆍ파총(把摠)ㆍ초관(哨官)ㆍ기패관(旗牌官)들에게는 절대로 알리지 말 것. 중도 문안은 서울에서 반쯤 되는 곳에서 한 차례 하되 물품은 모두 바치지 말 것이다.”

▶저리(邸吏) : 여기서는 해당 고을의 서울 연락사무소 같은 역할을 하는 경저리(京邸吏) 또는 경주인(京主人).

▶공형(公兄) : 삼공형(三公兄)의 준말. 고을 관아의 사무를 나누어 분담하는 육방(六房) 가운데, 이방(吏房), 호방(戶房), 형방(刑房)이 가장 중요하다 하여, 그 우두머리 이속 3명을 삼공형이라 불렀다. 수령이 자리를 비울 때는 삼공형의 수석인 호방의 우두머리인 호장(戶長)이 대리하였다.

▶영기(令旗) : 길을 안내하거나 전령 기능을 하는 ‘영令’ 자가 쓰여 있는 기

▶천총(千摠) …… 기패관(旗牌官) : 천총(千摠)ㆍ파총(把摠)ㆍ초관(哨官)은 속오군(束伍軍)의 지휘관들이고, 기패관(旗牌官)은 기수(旗手)이다.

 

옛날에 지장(支裝)하는 물건에는 안장, 옷감, 종이, 반찬 등 그 수효가 많았는데, 이는 신영하는 예절이었다. 이 예물을 받으면 친척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옛날 도리였다. 이런 일이 아름다운 풍습이기는 하지만, 중세 이래로 군읍의 재정은 마르고 피폐해져서, 모든 일은 절약하기에 힘써야 하므로 지장(支裝)은 생략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관아 청사의 수리에는 종이를 많이 낭비하고, 백성과 승려들을 부역시킴으로써 그 폐단이 적지 않기 때문에 도임 후 형편을 보아서 수리하는 것이 좋다.

 

신영(新迎)하는 기치(旗幟)는 으레 속오군(束伍軍)을 잡아다가 받들어 잡도록 하는데, 읍에 들어오는 자는 수십 일씩 묵고, 읍에 들어오지 않는 자는 사사로이 징렴(徵斂)함이 있어, 농사철을 당하면 더욱 백성들의 폐해가 되니 유의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무릇 촌백성들이 읍에 와서 머물게 되면 민폐가 된다. 그러므로 풍헌, 약정, 장관(將官)들이 문안드리는 일은 생략하는 것이 좋다.

▶속오군(束伍軍) : 임진왜란(壬辰倭亂) 이후, 지방에서 군역(軍役)이 없는 양인(良人)이나 공사노(公私奴)의 장정을 골라 조직한 군대. 평시에는 군포(軍布)를 바치게 하고, 유사시는 군역(軍役)을 치르게 하였다. 영장(營將)이 단위군(單位軍)의 최고 지휘관이고 그 밑에 천총(千摠), 그 밑에 파총(把摠), 그 밑에 초관(哨官)이 있었다.

▶징렴(徵斂) : 세금 따위를 거두어들이는 일

▶장관(將官) : 속오법(束伍法)의 군사편제에 의하면 부사령관에 해당하는 중군(中軍)으로부터 시작하여 최소의 군사편제단위인 대(隊)의 지휘관인 대장(隊長)까지가 모두 휘하에 병사를 거느리는 장관에 해당하였다.

 

신영(新迎)하는 처음에는 고을 아전의 문안드리는 하인들이 잇달아 끊이지 않는데, 필경 그들이 왕래하는 비용은 모두 백성들에게서 나온다. 도임한 후에는, 문례(門隷) - 곧 사령(使令) - 는 그것을 빙자하여 마을에서 비용을 징수하되, 혹 이를 동령(動鈴) - 곧 빈손으로 구걸한다는 말 - 이라고도 하고, 혹은 조곤(釣鯤) - 곧 술병을 차고 구걸한다는 말. - 이라고도 하며, 혹 계방촌(契房村)에서 하기도 하고, 혹은 도서(島嶼)와 두메마을에서도 한다. 그러므로 문안드리는 하인을 자주 보내서는 안 된다.

▶문례(門隷) : 관사(官司) 등에서 잡무를 보는 하급 관원 혹은 심부름꾼

▶계방촌(契房村) : 계방(契房)으로 정해진 마을. 이방청(吏房廳), 향청(鄕廳), 장관청(將官廳), 하리청과 같은 지방행정기관들이 사사로이 부역을 징수하는 대신에 주민의 각종 신역을 면제해 주던 마을. 감사·수령 등 상관에 대한 과도한 봉사, 감사의 신영(新迎)과 순행에 따른 비용, 불공정한 관식(官式)에 의한 물품의 조달, 회계에 없는 물품의 구입 등, 아전들이 관아에서의 비정상적인 지출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방법으로 생겨났다.

 

『다산필담(茶山筆談)』에는 이렇게 말하였다.

“신영하는 추종(騶從) 중에서 가장 쓸모없는 사람은 이방(吏房)이란 아전이다. 내가 부임할 때 어머니를 모시고 아내를 데리고 함께 가려 한다면 이방이 없어도 안 되지만, 만일 나 혼자 간다면, 이방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저보(邸報)를 내려 보내는 처음에 이렇게 전령하여야 할 것이다.

“본관은 이제 혼자 떠나니 모든 절차에 간략하고 생략하기에 힘쓰라. 신영하는 이방은 절대로 올라오지 말고 다만 경계에 나와 기다리라. 형리(刑吏) 1인이 주리(厨吏) - 이른바 감상(監嘗)이다. - 를 겸하고, 관리(館吏) - 곧 행차공방(行次工房) -, 통인(通引) - 곧 시동(侍童) - 1인,시노(侍奴) - 곧 급창(及唱) - 2인, 추종(騶從) - 곧 추종방자(騶從房子) - 2인, 조례(皁隷) - 곧 사령(使令) - 3인은 곧 올라와도 좋으나, 이외의 사람들은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

만약 자기 사정이 간략히 하고 생략할 수 없다면, 모름지기 수를 늘려야겠지만 적을수록 좋다.

▶다산필담(茶山筆談) : 정약용(丁若鏞)의 저술로 보이나 따로 전하는 것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추종(騶從) : 수행하는 종

▶주리(厨吏) : 수령의 음식을 관장하는 아전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