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목민심서 6 - 분수에 맞게 처신하라.

從心所欲 2021. 2. 27. 06:26

【註】치장(治裝)은 수령이 부임할 때의 행장(行裝)이다. 여행(旅行)할 때 지니는 물건(物件)이나 차림, 동원되는 모든 기구(器具)를 말한다.

 

[김홍도필풍속도(金弘道筆風俗圖) 8점 中 6, 1770년작, 지본담채, 121.8 x 39.4cm, 국립중앙박물관]

 

 

●부임(赴任) 제2조 치장(治裝) 1.

 

행장을 차릴 때, 의복과 안마(鞍馬)는 모두 옛것을 그대로 쓰고 새로 마련해서는 안 된다.

(治裝其衣服鞍馬 竝因其舊 不可新也)

 

백성을 사랑하는 근본은 비용을 절약하는 데 있고, 비용을 절약하는 근본은 검소한 데 있다. 검소한 뒤에야 청렴하고, 청렴한 뒤에야 자애로울 것이니, 검소야말로 목민(牧民)하는 데 먼저 힘써야 할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못 배우고 지식이 없어서 산뜻한 옷차림에 고운 갓을 쓰고, 좋은 안장에 날랜 말을 타고서는, 위풍을 떨치면서 세상에 자랑하려고 하지만, 노련한 아전은 신관(新官)의 태도를 살필 때, 먼저 그의 의복과 안마(鞍馬)를 묻되 만일 사치스럽고 화려하다면 비웃으면서 ‘알 만하다’ 하고, 만일 검소하고 허술하면 놀라면서 ‘두려운 분이다’ 하는 줄은 모르고 있다. 거리의 애들이 부러워하는 것을 식자(識者)들이 비루하게 여기니, 도대체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어리석은 자는 남들이 자기를 부러워하는 줄 착각하고 있지만, 부러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미워한다. 자기 재산을 털어다가 자기 명예마저 손상시키고, 게다가 남의 미움까지 사게 되니 이 또한 어리석은 짓이 아닌가. 무릇 사치스러운 짓은 어리석은 자나 하는 것이다.

▶안마(鞍馬) : 안장을 얹은 말. 안구마(鞍具馬)라고도 한다.

 

수령으로 나가는 사람은 반드시 경관(京官)으로서 나가는 것이다. 의복ㆍ안마(鞍馬)는 다 대강 갖추어 있을 것이니 그대로 행차하는 것이 또한 좋지 않겠는가. 한 가지도 새로 만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선(鄭瑄)은 말하였다.

“가난한 선비가 갑자기 벼슬을 하게 되어 타는 여마(輿馬)며, 부리는 종복(從僕)이며, 먹는 음식과 입는 의복 따위들을 부귀한 집안사람들과 비길 만큼 화려하게 하려 한다면, 털끝만한 것일망정 모두 빚쟁이 손에서 나올 것이다. 발탁되어 소관 부서를 찾아보고 임지로 가는 데에 빚쟁이가 뒤따르게 되니, 국고를 도적질하거나, 여염 백성들을 훑어내지 않으면 무슨 수로 갚겠는가?”

▶정선(鄭瑄) : 중국 명나라의 관리

▶여마(輿馬) : 수레와 말

 

송(宋)나라 범공칭(范公偁)의 《과정록(過庭錄)》에는,

“선군(先君)이 전에 수주(遂州)로 부임하실 때 행장이라고는 겨우 석 짐 밖에 되지 않았고, 벼슬을 그만두고 올 때도 전과 다름없었다. 어떤 일이 있을 때 거취에도 간편할 뿐만 아니라, 외관상 추태를 면할 수 있는 것이다.”

하였다.

대저, 양성재(楊誠齋)가 조정에 벼슬하면서 한 물건도 사들이지 않은 것은 돌아올 때의 짐에 누(累)가 될까 두려워서였고, 범 우승(范右丞)이 부임할 때 겨우 석 짐만 휴대한 것은, 행장이 간편해야 할 것을 생각한 것이니, 거취가 이렇다면 주고받는 데 청렴하지 않은 것이 어찌 있겠는가.

 

명(明)나라 해서(海瑞)가 남총헌(南總憲)이 되어 처음 부임할 때, 겨우 상자 두 개를 휴대하였더니, 배가 상하(上河)에 닿아도 사람들이 오히려 알지 못하였다. 한번은 병이 들어 의원(醫員)을 불렀는데, 의원이 방 안을 둘러보니 깔고 덮는 이부자리는 모두 흰 베라, 쓸쓸하기가 가난한 선비 이상이었다.

참판(參判) 유의(柳誼)가 홍주목사(洪州牧使)로 있을 때에, 찢어진 갓과 굵은 베도포에 간장 빛깔의 낡은 띠를 두르고 느릿느릿한 말을 탔으며, 이부자리는 남루하여 요도 베개도 없었다. 이렇게 하여 위엄이 서서, 가벼운 형벌도 쓰지 않았는데도 간활(奸猾)한 무리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내가 직접 보았다.

▶유의(柳誼) : 조선의 문신(1734 ~ ?)으로, 벼슬은 병조참판(兵曹參判), 승지 등을 지냈고 홍주목사(洪州牧使)로 나가서 선정을 베풀었다. 뒤에 대사헌(大司憲)에 올랐다.

 

《한암쇄화(寒巖瑣話)》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참판 윤광안(尹光顏)이 나와 외각(外閣)에서 교서(校書)할 때, 거친 베도포가 마치 상복차림 같았다. 그가 경상도 감사가 되어서는 위엄이 가는 곳마다 행해졌다. 참판 유강(柳焵)이 충청도 감사로 있을 적에 밀랍으로 밀화(蜜華)를 만들어 패영(貝纓)으로 삼으니, 열읍(列邑)이 두려워하면서 그의 청검(淸儉)에 복종하였다.

 

사서(司書) 김서구(金叙九)는 언제나 검소함을 좋아하여 거친 베도포 위에 양(羊) 갖옷을 걸치고 다니매 거리의 아이들이 비웃더니, 그가 해남 현감이 되자 백성들에게 은혜와 위엄이 아울러 행해져서, 학질 환자가 방술(方術)로 썼다.

옛날의 청렴한 관리들은 모두가 이러하였던 것이다.

청렴하면 재물을 손해 보니 행하기 어렵다고 하겠지만, 검소하면 비용이 들지 않는데 어찌 쉽게 행하지 못하겠는가?

 

근자에 한 무관(武官)이 해남 현감이 되었는데 비단 주머니 끈을 길게 늘어뜨렸으므로, 이웃 고을 강진(康津) 아전이 보고, ‘그 주머니 맵시를 보니 반드시 음란하고 탐욕할 것이다.’ 하더니, 과연 그러하였다. 이것이야말로 사람됨을 보는 기이한 방법인 것이다. 이는 유식한 사람만이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간휼한 아전들도 다 알 수 있으니,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한암쇄화(寒巖瑣話) :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되었던 시기에 기록한 저술로 보이나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패영(貝纓) : 산호(珊瑚)ㆍ호박ㆍ밀화(蜜華)ㆍ대모(玳瑁) 등으로 만든 갓끈.

▶사서(司書) : 조선조 때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정6품 벼슬. 세자에게 경사(經史)와 도의(道義)를 가르쳤다.

▶김서구(金叙九) : 사간원의 정언(正言), 사헌부의 지평(持平) 등을 지낸 조선 문신(1725 ~ ?).

▶갖옷 : 짐승가죽으로 만든 옷. 구의(裘衣)라고도 한다.

 

일산[繖]은 가리는 것이다. 50년 전만 해도 당하관(堂下官)은 반드시 흑산(黑傘)을 가졌는데, 이것이 바로 옛날 조개(皁盖)라는 것이다. 근세에 풍속이 흰 것을 좋아하여 위로는 대신(大臣)으로부터 아래로는 현감(縣監)에 이르기까지 모두 흰 일산을 사용하는데, 이는 예에 어긋나는 것이다. 검은 일산은 해를 가리지만 흰 것은 햇빛이 새어나온다. 무릇 수령으로 외출할 때는 당상관(堂上官)ㆍ당하관을 막론하고 다 흑산을 갖게 하되, 제유(臍帷)와 유수(紐垂)로 그 품급(品級)을 구별하는 것이 - 혹 색깔로 구별하기도 하고, 혹 동(銅)과 철(鐵)로 구별하기도 한다. - 또한 마땅할 것이다. 비록 남들이 하는 것과 어긋난다 하더라도 흰 것은 안 된다.

▶조개(皁盖) : 검은 일산(日傘).

▶제유(臍帷) : 일산 가장자리에 드리워진 짧은 휘장.

▶유수(紐垂) : 일산의 가장자리에 드리워진 장식용 끈.

 

유옥교(有屋轎)의 청익장(靑翼帳)은 대부(大夫)만이 쓰는 물건이니, 당하관은 참람히 써서는 안 된다. 선조(先朝) 때 금령이 지극히 엄하여 범하는 자가 없었는데, 근래에 와서는 전대로 잘못을 저지르고 있으니, 이는 크게 예에 어긋나는 일이다. 수레와 복식을 공(功)에 의거하여 주는 일[車服以庸]은 임금의 큰 권한이다. 《주례(周禮)》에는 수레에 6등급이 있고 복장에도 6등급이 있어서, 그들의 급수(級數)에 따라 존비(尊卑)를 가리게 하였다.

유옥교의 청익장도 벼슬의 품급에 따라서 사용에 한계를 정하여 이를 금한 것은 《주례》가 남긴 뜻이니 범해서는 안 된다.

▶유옥교(有屋轎) : 지붕과 둘레가 있는 가마.

▶청익장(靑翼帳) : 가마에 두른 푸른 휘장.

▶주례(周禮) : 주공 단(周公旦)이 지었다고 하는 유가 경서(經書)의 하나로 중국 고대의 주(周)나라 때 관제(官制)를 담은 책이다. 천지춘하추동(天地春夏秋冬)의 6상(像)에 따라 그 관제(官制)를 세웠는데 6편(篇) 360관(官)이다.

 

한(漢)나라의 법에는 천 석의 장리(長吏)만이 조개(皁盖)와 주번(朱旛)을 쓸 수 있다. 황패(黃覇)가 양주 자사(揚州刺史)가 되어 치적이 뛰어나니, 임금이 거개(車盖)를 주되 특히 높이를 한 길이나 되게 하여 그의 덕을 빛나게 하였다. 소량(蘇亮)이 기주 자사(岐州刺史)가 되자, 왕은 특히 노거(路車)와 고취(鼓吹)를 주어, 치적을 권장하였다. 임금이 주지 않는데도 탄다면 어찌 권장될 것이 있겠는가?

▶장리(長吏) : 벼슬이 높은 관리나 지방관의 우두머리. 녹봉이 6백석 이상인 자를 일반적으로 장리(長吏)라고 한다.

▶주번(朱旛) : 붉은 기.

▶노거(路車) : 제후(諸侯)가 타는 수레.

▶고취(鼓吹) : 북과 피리.

 

요즈음은 하찮은 고을 수령만 되어도, 모두 옥교(屋轎)를 타고 나라의 금법을 사사로이 어겨가면서 제각기 자기의 영귀(榮貴)함을 드러내려 하니, 나라의 기강과 법도가 이에 이르러 없어지고 만 것이다.

무신(武臣)은 안마(鞍馬)를 타야 하는 것이 또한 조정의 영이니, 어겨서는 안 된다.

▶옥교(屋轎) : 나무로 집과 같이 꾸미고 출입하는 문과 창을 달아 만든 가마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이 관설(觀雪) 허후(許厚) - 허공(許公)은 은일(隱逸)로 지평(持平)이다. - 의 말을 기록하였다.

“감사가 교자(轎子)를 타되 겨울철에는 휘장을 늘어뜨리고, 여름철에는 휘장을 걷어 올리며 일산으로 해를 가릴 따름인데, 요새 사람들은 3면에 걷는 휘장을 두르니, 이는 참람하게도 임금의 승여(乘輿)를 본뜬 것이다.”

하니 그 말에 소름이 끼친다.

우리나라 법전을 상고해 보면,

“쌍마교(雙馬轎)는 관찰사(觀察使)와 2품(品) 이상만이 탈 수 있다.”

하였고, 또,

“승지(承旨)를 지냈거나 의주부윤(義州府尹)이나 동래 부사(東萊府使)도 탈 수 있다.” - 요즈음은 제주 목사(濟州牧使)도 탈 수 있다. - 하였으니, 3품이면 또한 쌍교(雙轎)를 탈 수 있다. 그러나 3품도 임금의 명을 받지 않고 타서는 안 된다.

내 생각에는, 쌍마교는 폐단이 있으므로 상신(相臣)과 정경(正卿)만 타고, 아경(亞卿)과 하대부(下大夫)는 유옥교(有屋轎)를 타는 것이 좋을 듯하다. 쌍마교에도 3면에 걷는 휘장이 있으니, 허공(許公)의 말이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이경석(李景奭), 허후(許厚) : 모두 1600년대 조선의 문신으로 이경석은 영의정을 지냈다.

▶은일(隱逸) : 숨은 학자로서 임금이 특별히 벼슬을 내린 사람

▶승여(乘輿) : 임금이 타는 수레.

▶우리나라 법전 : 여기서는 《속대전(續大典)》

▶쌍마교(雙馬轎) : 쌍가마. 말 두 필이 각각 앞뒤 채를 메고 가는 가마(駕馬). 조선 시대에는 원칙적으로 외국에 나가는 사신, 관찰사 등 종2품관 이상의 벼슬아치만 탈 수 있었다. 또한 지방에서만 타고 서울에서는 타지 못하였다.

▶관찰사(觀察使) : 문관의 종2품 외관직(外官職)벼슬로, 팔도(八道)의 장관(長官)이다. 감사(監司)ㆍ도백(道伯)ㆍ도신(道臣)이라고도 한다.

▶승지(承旨) : 승정원(承政院)의 도승지(都承旨)ㆍ좌승지ㆍ우승지ㆍ좌부승지ㆍ우부승지ㆍ 동부승지(同副承旨)의 총칭. 품계(品階)는 정3품 당상(堂上)이다.

▶상신(相臣) : 영의정(領議政)ㆍ좌의정(左議政)ㆍ우의정(右議政)의 총칭.

▶정경(正卿) : 조선조 때 정2품 이상의 벼슬인 의정부(議政府)의 참찬(參贊), 육조(六曹)의 판서(判書), 한성부(漢城府)의 판윤(判尹), 홍문관(弘文館)의 대제학(大提學) 등을 말한다.

▶아경(亞卿) : 정경(正卿)의 다음 벼슬로 품계는 종2품. 즉 육조(六曹)의 참판(參判), 한성부의 좌윤(左尹)ㆍ우윤(右尹)을 일컫는 말이다.

▶하대부(下大夫) : 대부(大夫)는 정1품에서 종4품까지의 벼슬 품계에 붙여 부르는 호칭으로, 그 가운데 하대부는 당하(堂下)인 정3품부터 종4품까지를 가리킨다.

 

반자진(潘子眞)이 말하기를,

“예(禮)에 천자는 육마(六馬)에 좌우참(左右驂)이요, 삼공(三公)ㆍ구경(九卿)은 사마(駟馬)에 좌참(左驂)이다. 한(漢)나라 제도에 구경은 이천 석으로 우참(右驂)이요, 태수(太守)는 사마(駟馬)일 따름인데, 벼슬 급수가 중이천석(中二千石)인 경우에는 우참이다. 그러므로 오마(五馬)로써 태수의 미칭(美稱)으로 삼은 것이다.” 하였다.

《학림(學林)》에는,

“한(漢)나라 때 조신(朝臣)이 사신으로 나가서 태수가 되면 1마(馬)를 더 주었으므로 오마(五馬)가 되었다.”하였다. - 《돈재한람(遯齋閑覽)》에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

▶좌우참(左右驂) : 좌우에 곁말을 두는 것

▶사마(駟馬) : 네 필이 끄는 수레

▶벼슬 급수가 중이천석(中二千石) : 한대(漢代)의 제도에서는 받는 봉록(俸祿)의 다과(多寡)로 관리 등급의 표준을 삼았다. 중이천석(中二千石)은 2천석이 찬다는 뜻으로 한 해에 받는 녹이 2160석, 2천석(二千石)은 1440석, 비2천석(比二千石)은 2천석에 견줄 수 있다는 뜻으로 실제 받는 녹은 1200석이었다고 한다. 《漢書 百官公卿表 注》

 

살피건대, 옛날 태수들은 현읍(縣邑)을 두루 순행(巡行)하였으니, 이는 곧 우리나라의 감사(監司)이다. 이제 자그마한 현의 수령이 태수라 참칭하고, 오마(五馬)로써 체모를 갖추려고 하니 이도 잘못인 것이다.

 

풍원숙(馮元淑)이 준의(浚儀)와 시평(始平) 두 현의 수령을 지냈는데 모두 단기(單騎)로 부임하였다.

위(魏) 최임(崔琳)이 언릉령(鄢陵令)이 되어 도보로 부임하였다.

《야인우담(野人迂談)》에는 이렇게 말하였다.

“중국에서는 관원을 맞이하고 보낼 때 사람과 말을 지급하지 않고, 관원들은 다만 문서(文憑)를 가지고 부임하면, 관리ㆍ유생(儒生)ㆍ기로(耆老)ㆍ백성들은 성 밖까지 나와서 영접할 뿐이다.”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