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목민심서 7 - 부임하는 길에 동행(同行)이 많아서는 안 된다.

從心所欲 2021. 3. 3. 05:42

[김홍도필풍속도(金弘道筆風俗圖) 8점 中 7, 1770년 작, 지본담채, 121.8 x 39.4cm, 국립중앙박물관]

 

 

●부임(赴任) 제2조 치장(治裝) 2.

동행(同行)이 많아서는 안 된다.

(同行者 不可多)

▶치장(治裝) : 수령이 임지에 부임할 때의 행장.

 

자제 한 사람이 따라가면 좋을 것이다.

요즈음 풍습에 소위 책객(冊客)이라는 것이 있어 회계를 맡고 있는데, 이는 예(禮)가 아니니 없애야 한다. - 다음 병객조(屛客條)에 자세히 나온다. - 만약 자기의 글 솜씨가 거칠고 졸렬하면, 한 사람쯤 데리고 가서 서기(書記)의 일을 맡기는 것은 좋다.

겸인(傔人)은 관부(官府)의 큰 좀이니, 절대로 데리고 가서는 안 된다. 만약 공이 많은 자가 있으면, 후하게 줄 것을 약속하면 된다.

노복(奴僕)을 데리고 가서는 안 된다. 다만 한 사람쯤은 내행(內行) 때 따라오도록 한다.

총괄하여 말하면 자제 이하는 관속(官屬)들과 접촉하여서는 안 된다. 신영(新迎)하는 아전이 올라오는 날에 수리(首吏)를 불러 약속을 하되,

“자제 이하는 얼굴은 대면할 수 있지만, 말을 나누어서는 안 된다. 자제들이 말을 걸면 너희들이 대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죄는 자제들에게 있다. 그렇지 않고 우연히 말 한마디라도 건다면 네게 죄가 있다. 아전과 하인들이 말을 거는 것을 금하지 못하면 네게 죄가 있다.”

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에 자기 사람을 단속하여 금법을 법하지 못하도록 하고, 범하는 자가 있거든 용서 없이 꼭 죄를 다스려야 할 것이다.

▶책객(冊客) : 고을 수령의 비서(秘書) 사무를 맡아보던 사람으로 관제(官制)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사로이 임용하였다. 책방(冊房)이라고도 한다.

▶겸인(傔人) : 양반집에서 잡일을 맡아보거나 시중을 들던 사람. 청지기, 또는 겸종(傔從)이라고도 한다.

▶내행(內行) : 부녀자의 나들이. 여기서는 수령 부인의 행차.

▶신영(新迎) : 도(道)나 군(郡)의 장교나 아전이 새로 도임하는 감사나 수령을 그 집에 가서 맞아오는 일.

▶수리(首吏) : 각 지방 관아의 으뜸이 되는 향리(鄕吏). 육방(六房) 체제에서 호구관리, 전결 조사, 부세의 부과와 징수 등에 관한 일을 담당하는 호방(戶房)의 우두머리인 호장(戶長)을 가리키기는 경우도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향리의 인사, 고과 등의 실무를 담당하던 이방(吏房)을 지칭한다.

 

허자(許鎡)가 가선령(嘉善令)이 되었는데 청렴하고 강직하여, 부임할 때 겨우 아들 하나, 종 하나를 데리고 갔다. 겨울철에 그 아들이 추위에 떨면서 공(公)에게 밖에 나가서 숯을 구해 오게 해 주기를 청하였더니, 공은 창고에서 나무막대기 한 개를 가져오게 하여 그것을 주면서,

“이것을 밟아 굴리면 발이 저절로 따뜻해질 것이다.”

하였다.

살피건대, 이는 너무 각박해서 인정에 가깝지 않으니 본받을 것이 못 된다.

조청헌(趙淸獻)이 성도(成都)로 부임할 때, 거북 한 마리, 학 한 마리를 가지고 갔고, 재임(再任) 때는 그 거북과 학마저 버리고 다만 종 하나뿐이었다. 장공유(張公裕)가 시를 지어 전송하였다.

 

말은 옛길 알아 오가기에 수월하고 / 馬諳舊路行來滑

거북은 장강에 놓아주어 함께 오지 않았네. / 龜放長江不共流

 

양계종(楊繼宗)이 가흥지부(嘉興知府)가 되었을 때 종 하나만 데리고 갔으므로 마치 길손 행색 같았다. 임기 9년이 되어도 끝내 가족을 데리고 가지 않았다.

왕서(王恕)가 운남(雲南) 지방을 순무(巡撫)하러 갈 때, 종은 데리고 가지 않고 고시(告示)를 써 붙이기를,

“집안 하인을 데리고 오고는 싶었으나, 백성들의 원망을 살까 두려웠으므로 늙은 몸을 돌보지 않고 단신으로 온 것이다.”

하니, 모두 향을 피우며 예를 드렸다.

 

당간(唐侃)이 영풍지현(永豐知縣)이 되어 부임할 때, 처자는 데리고 가지 않고 종 한둘만 데리고 나물밥과 콩국으로 지내니, 오래되매 아전과 백성들이 믿고 복종하였다.

사자양(謝子襄)이 벼슬살이 하되 청렴하고 근신하여, 벼슬살이 30년에 가족을 데리고 가지 않았다. - 이상은 《명사(明史)》에서 인용하였다. -

▶허자(許鎡)... : 위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거의 대부분 중국 명(明)나라의 관리들이고, 조청헌(趙淸獻)만 송(宋)나라 사람이다.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