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목민심서 8 - 맑은 선비의 행장

從心所欲 2021. 3. 4. 09:26

[김홍도필풍속도(金弘道筆風俗圖) 8점 中 8, 1770년 작, 지본담채, 121.8 x 39.4cm, 국립중앙박물관]

 

 

●부임(赴任) 제2조 치장(治裝) 3.

이부자리와 옷가지 외에 책을 한 수레 싣고 가면, 청사(淸士)의 행장(行裝)일 것이다.

(衾枕袍襺之外 能載書一車 淸士之裝也)

▶치장(治裝) : 수령이 임지에 부임할 때의 행장.

▶청사(淸士) : 청렴(淸廉)하고 결백(潔白)한 선비

 

요즈음 현령으로 부임하는 사람들은 겨우 역서(曆書) 한 권을 가지고 가고, 그 밖의 서적들은 한 권도 행장 속에 넣지 않는다. 가면 으레 많은 재물을 얻게 되어 돌아오는 행장은 무겁게 마련이니, 한 권 책일망정 누(累)가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가엾다, 그 마음가짐의 비루함이 이와 같으니, 어찌 또 목민(牧民)인들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역서(曆書) : 일정한 역법(曆法)의 편제(編制)에 따라 연(年), 월(月), 일(日), 시(時)와 계절 등을 전문적으로 기록한 책. 달력.

 

문사(文士)가 벼슬을 살게 되면, 이웃에 사는 선비들이 물으러 오는 일이 절로 있을 것이요, 이보다 한 등 아래로는 선비들이 과거 공부로 글짓기 배우는 것을 권장하기 위해 글 제목을 낼 때에도 모름지기 서적이 있어야 하고, 이보다 한 등 아래로는 혹 이웃 고을 수령이나 벼슬아치들과 한자리에 모여, 산수(山水)에 노닐게 될 때 운을 내어 시도 짓게 되리니, 고인의 시집(詩集)도 있어야 한다. 하물며 전정(田政)ㆍ부역ㆍ진휼(賑恤)ㆍ형옥(刑獄)에 관하여서도, 옛 책을 상고하지 않고서 어찌 일을 의논할 수 있겠는가.

▶전정(田政) : 토지에 세를 부과하여 수취하는 일련의 제도 및 그와 관련한 행정.

 

남북의 먼 변방은 기후 풍토가 아주 다른데, 질병은 걸리고 의원은 구하기 힘드니, 의서(醫書) 몇 권이 없어서야 어찌 될 말인가. 변방에서는 군대를 맡아 조석으로 변란에 대비해야 하는데, 곧 척계광(戚繼光)ㆍ유대유(兪大猷)ㆍ왕명학(王鳴鶴)ㆍ모원의(茅元儀)가 편술한 책들은 또 불가불 항상 펴 보아야 할 것이니, 책을 한 수레 싣고 가는 일은 그만둘 수 없을 것이다. 돌아오는 날에 토산물은 싣지 말고, 이 책수레만 끌고 오면 청풍(淸風)이 길에 가득하지 않겠는가.

▶척계광(戚繼光) : 병서가(兵書家)로 왜구가 한창 명나라 연해를 침범할 때 절강성(浙江省)에서 새로운 진법(陣法)을 마련하여 왜구의 격퇴에 많은 공을 세운 중국 명(明) 나라 때의 장군. 「기효신서(紀效新書)」라는 병서를 지었다.

▶유대유(兪大猷) : 척계광과 함께 여러 차례 왜구를 물리친 명나라 관리.

▶왕명학(王鳴鶴) : 병서《등단필구(登壇必究)》를 저술한 명나라 부총병(副摠兵).

▶모원의(茅元儀) : 고금의 병서(兵書) 2천여 권을 연구, 검토, 정리하여 240권에 이르는 병법서 『무비지(武備誌)』를 편집한 명나라 부총병.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