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

나는 일본인이 아니다.

從心所欲 2021. 3. 1. 10:20

[Tokyo Ueno Station 책 표지]

 

유미리(柳美里)씨는 일본 도쿄 우에노역 인근에서 노숙인으로 살다 숨진 뒤에도 여전히 근처를 떠도는 남자의 영혼을 통해 도시의 냉혹한 현실을 그린 소설 <제이아르(JR) 우에노역 공원 출구>를 영어로 번역한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Tokyo Ueno Station)>으로 2020년에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도서상 가운데 하나인 전미도서상(National Book Award) 번역부문 상을 받았다. 그리고 이 수상을 기념하여 도쿄에서 있었던 일본기자클럽 기자회견에서 유미리씨는 이런 말을 했다.

 

“ ‘일본인으로 두 번째’라든지 ‘일본 문학에서 두 번째’ 등 일본 작가라는 식으로 보도되는데 나는 일본인이 아니다”

 

우리나라 언론들은 이를 받아 유미리씨가 일본 언론을 꼬집었다든지 작심 발언을 했다는 식의 선동적 기사를 내보냈지만 사실 이 말은 유미리씨 자신의 고단했던 삶에 대한 고백일 뿐이었다.

유미리씨는 이 발언으로 인하여 우익들로부터 “일본이 싫으면 가족과 한반도로 돌아가라”, "너의 집을 불태우겠다.",

"아들과 함께 태워 죽이겠다."는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녀는 최근 "나는 한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니라는... (어느 쪽도) 아니라는 것에 나의 아이덴티티를 두고 있다"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복잡한 심정을 밝혔다.

 

유미리씨는 1968년 일본에서 재일 한국인 2세로 출생하였다. 부모의 학대와 폭력, 친구들의 집단 따돌림 등으로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면서 이로 인한 실어증과 자살 기도 등으로 아픈 성장기를 보냈다. 그리고 이지메에 시달리다 결국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중퇴하고 만다. 외할아버지가 “아름다운 마을처럼 살라”는 뜻으로 지어 준 ‘美里’라는 이름과 달리 그녀는 청소년기 때만 아니라 작가로 데뷔한 후에도 굴곡진 삶을 살았다.

 

16살 때부터 극단에서 활동하다 스무 살이 되던 1988년 희곡 작품으로 데뷔하여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유미리씨는 1997년 자전적 소재를 다룬 소설 <가족 시네마>로 일본문학계 최고 권위의 양대 문학상 중 하나인 아쿠타가와상(芥川賞)을 수상하였다. 당시 서점에서 사인회 행사를 가질 예정이었지만 우익 단체 소속의 남성이 “조선인이 건방지다. 팬 사인회를 하면 손님에게 피해를 주겠다”는 협박 전화를 해와 행사가 취소되는 사건도 있었다. 또한 그녀의 첫 소설인 1994년작 <돌에서 헤엄치는 물고기>가 친구인 재일 한국인의 사생활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일본 법원으로부터 출판금지 판결을 받았다. 일본 역사를 통하여 처음있는 일이다.

 

 

 

유미리씨는 현재 원전 사고 피해 지역민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하여 사고가 난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에서 약 16㎞ 떨어진 곳으로 2015년 4월부터 이주해 살고 있다고 한다.

 

[일본 외국특파원협회(FCCJ) 주최 기자회견 중인 유미리씨, 연합뉴스 사진]

 

그런 그녀가 지난 2월 25일 일본 외국특파원협회(FCCJ)가 도쿄에서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올림픽을 개최하려고 똥줄이 탄 일본의 감춰진 치부를 공개했다. 사회적으로 매우 열악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원전 해체를 위한 작업에 동원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최저임금이 싼 지역에서 일꾼을 모집하거나 노숙인이 많은 지역에서 무료 급식을 받기 위해 줄 서 있는 사람 등을 데려다가 방사성 물질 오염 제거, 지진 피해 가옥 해제, 쓰나미 피해 지역 부흥 공사 등의 작업에 투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증도 없고 당뇨병, 알코올 중독, 간경변 등을 앓고 있는 사람이 오염제거, 가옥해체, 원전 작업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후쿠시마 원전 인근 지역에서 일하다 죽은 사례도 있지만 "등록한 이름도 실제와 다르고, 죽어도 유골을 인수할 사람이 없어서 마을 절이 맡아두는 사태"라고 밝혔다.

 

이것이 세계 3대 경제대국이라고 자부하는 왜국의 현실이다. ‘자이니치’라고 혐오하고 따돌리다 외국의 유명한 상을 받으니까 당연히 ‘일본인’이었던 것처럼 내세우는 이중성의 교활함 뒤편에서는, 단지 노숙자라는 이유로 자국민들을 

죽음에 내몰고서도 아무 일도 없는 듯 태연한 반인륜적 잔혹성을 보여주는 국가다. 그 나라 국민들 역시 이에 대하여는 입을 다물고 있다. 누가 이런 파렴치한 나라와 국민의 일원이 되고 싶겠는가!

 

“나는 일본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