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목민심서 24 - 백성들에게 구언(求言)하라.

從心所欲 2021. 4. 3. 04:42

[김홍도 외 <안릉신영도(安陵新迎圖)> 中 부분 6, 지본채색, 전체 25.3 x 633cm, 국립중앙박물관]

▶<안릉신영도(安陵新迎圖)>는 황해도 안릉(安陵)에 새로 부임하는 관리의 행차를 긴 두루마리에 그린 행렬도이다. 조선시대에 제작된 의궤도에 보이는 반차도(班次圖) 형태로 그려졌다. 그림에 달린 글에 의하면 김홍도에게 그리게 했다고 적혀있지만, 그림의 세부 필치에 차이가 있음을 근거로 후세에서는 여러 화원 화가들이 함께 그렸을 가능성을 추정하고 있다.

요거(要擧), 배행(陪行)에 이어 수령의 사노비(私奴婢)로 추정되는 여인들이 아이들을 안거나 말에 태워 뒤따르고 있다.



● 부임(赴任) 제6조 이사(莅事) 2

이날로 사족(士族)과 백성들에게 영을 내려 고질적인 폐단이 무엇인지 묻고 의견을 구한다.

(是日 發令於士民 詢瘼求言)

▶이사(莅事) : 수령이 부임하여 실무를 맡아보는 일

 

관내(管內)의 사족과 각층의 인민들에게 공문을 내려 다음과 같이 말한다.

“행현령(行縣令)이 알리고자 하노라.

본관은 적임이 아님에도 외람히 나라의 은혜를 입고 이 고을에 부임하여 아침저녁으로 근심과 두려움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묵은 폐단이나 새로운 병폐로 백성들의 고통이 되는 것이 있으면 한 방(坊) 중의 일을 잘 아는 사람 5~6명이 한곳에 모여 의논해서 조목을 들어 문서를 갖추어 가져오라.

혹 한 고을 전체에 해당되는 폐단과 한 방(坊)이나 한 촌(村)의 특수한 고통은 각각 한 장의 종이에 쓰되, 방마다 하나의 문서를 갖추어서 지금부터 7일 이내로 일제히 와서 바치라.

혹 아전ㆍ군교ㆍ토호들이 들으면 싫어할 일이어서, 후환이 두려워 드러내어 말하지 않는다면, 수령이 부임한 초에 폐단을 묻는 본의에 어긋나는 것이다.

각각 엷은 종이로 피봉(皮封)을 만들어 풀로 붙이고 그 밖에 표지하여 어느 날 정오에 함께 읍내에 들어오고 또 함께 관아의 뜰에 와서 본관의 면전에 직접 바치라.

만약 어떤 간민(奸民)이 있어 읍내에 들어와서 오래 머물면서 위의 문서를 고치거나 삭제하는 사람이 있으면 마땅히 엄벌에 처할 것이다. 이 점을 잘 알라.

민폐를 물어 알기는 쉬우나 개혁하기는 극히 어려운 일이다. 고칠 만한 것은 고치고 고칠 수 없는 일은 그대로 둘 수밖에 없다. 오늘에 너무 떠들지 말고 후일에 실망함이 없도록 하라.

방리(坊里)의 사사로운 폐단을 혹시 사정을 두어 헛되이 과장하고 그 실상을 감추거나 뜬소문을 꾸미는 사람이 있으면, 마침내는 죄를 받게 될 것이니 아울러 조심하라.”

▶행현령(行縣令) : 관직제도에서 품계보다 낮은 직위에 있는 경우 ‘행(行)’을 붙이고, 반대로 품계가 낮은데 높은 직위에 있는 경우에는 ‘수(守)’를 붙였다. 여기서는 ‘현임 현령’의 의미로 쓴 관행적 표현으로 보인다.

▶방(坊) : 조선 시대 행정구획의 명칭. 서울에는 5부(部) 밑에 각 방(坊)이 있었고, 지방에는 현(縣) 밑에 방(坊)이 있었다. 지방의 경우 방(坊)은 면(面)과 같은 단위이며, 풍헌(風憲)이 이를 관장한다.

▶군교(軍校) : 각 군영이나 지방 관아에서 군무에 종사하는 하급 무관.

▶토호(土豪) : 향촌에 토착화한 지방세력.

▶방리(坊里) : 마을, 부락.

 

신관(新官)이 부임하면 으레 소 잡는 일, 술 담그는 일, 소나무 남벌하는 일 등 세 가지 금령을 엄중히 내리게 되어 있으나, 이는 하나의 형식에 지나지 않으니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주자(朱子)가 남강(南康)에 부임한 당초에 다음과 같은 유시하는 방문(榜文)을 써붙였다.

“본관은 오랫동안 질병으로 시골에 물러나 있다가 근래에 외람히 나라의 은혜를 입어 이 지방을 지키게 되었으므로 간절히 사양하였으나 되지 않아 병든 몸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부임한 처음에 스스로 생각해 보건대, 성스러운 천자께서 깊이 숨어 있는 사람을 찾아내어 민사(民社)를 부탁하여 맡긴 뜻은 본디 교화(敎化)를 펴 밝히고 민력(民力)을 배양하려 한 것이요, 한갓 문서를 정리하여 기일에 대어 보고하는 실적 올리는 것만을 책임지운 것이 아니다. 돌아보건대, 비록 능하지 못하나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제 묻고 들어서 권유해야 할 다음과 같은 일이 있다.

▶민사(民社) : 백성과 사직(社稷).

 

1. 부역이 번다하고 부세(賦税)가 무거운 일에 대하여 그 이로움과 병폐의 근원과 경위를 능히 알면 마땅히 어떠한 조처를 취할 것인가.

1. 전대 효자 사마씨(司馬氏)와 웅씨(熊氏)는 모두 효행으로 드러났고, 또 의문(義門) 홍씨(洪氏)는 대대로 의롭게 살았으며, 과부 진씨(陳氏)는 절개를 지키고 개가하지 않았다. 바라건대, 후세 사람들도 몸을 닦아서 옛사람에게 부끄럽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1. 청컨대 향당(鄕黨)의 부형들은 자제 중 학문에 뜻이 있는 자를 입학하게 하라.”

▶향당(鄕黨) : 주(周)나라 제도에 500집을 당(黨), 2500집을 향(鄕)이라 하였다. 흔히 자라난 고장을 말하고 여기서는 자신의 관할 지역을 가리킨다.

 

살피건대, 주자의 이 글은 첫째는 민생[食]을 말한 것이요, 둘째는 교화[敎]를 말한 것이요, 셋째는 학문[學]을 말한 것이다. 군자가 백성들을 대함에 있어서 반드시 먼저 먹고살게 한 후에 교화를 할 것이요, 교화를 한 후에 학문을 닦게 할 것이니 이것이 그 뜻이다.

 

범재(泛齋) 심대부(沈大孚)가 성산 현감(星山縣監)이 되었을 때 성문에 방을 붙여서 말하였다.

“몸가짐을 맑고 근실하게 하며 정사를 공평히 하는 것은 태수(太守)의 할 일이니 태수가 힘쓸 것이요, 효도와 우애를 돈독히 하고 약속을 잘 지켜 법령을 어기지 않는 것은 백성의 할 일이니, 백성은 이를 힘쓰라.”

▶심대부(沈大孚) : 조선 문신(1586 ~ ?). 인조 때 성산 현감(星山縣監)과 사간(司諫)을 역임하였다.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 다산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