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목민심서 41 - 진솔하게 민정(民政)을 살피면 백성이 기뻐한다.

從心所欲 2021. 5. 23. 17:34

[전 김홍도(傳 金弘道) <누숙경직도(樓璹耕織圖)> 中 삽앙(揷秧 : 모심기), 33.6 x 25.7cm, 국립중앙박물관 ㅣ 〈누숙경직도(樓璹耕織圖)>는 송나라의 누숙(樓璹)이 빈풍칠월도(豳風七月圖)를 참고하여 농업과 잠업의 일을 순서에 따라 묘사하여 황제에게 바친 것에서 유래되었다. 조선에는 연산군 4년인 1498년에 조선에 처음으로 전래되었다 하며, 청나라 때의 〈패문재경직도(佩文齊耕織圖)〉와 함께 왕에게 올리는 감계화(鑑戒畵)로 제작되었다.]

 

 

● 율기(律己) 제1조 칙궁(飭躬) 10

수행하는 인원을 간략하게 하고 안색을 부드럽게 하여 백성에게 묻고 찾으면 기뻐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簡其騶率 溫其顏色 以詢以訪 則民無不悅矣)

▶율기(律己)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2편인 율기(律己)는 자신을 가다듬는 일을 말한다. 수신(修身)ㆍ제가(齊家)ㆍ치국(治國)ㆍ평천하(平天下)가 일체 자기의 행동을 바르게 하는 수신(修身)을 근본으로 삼는 만큼, 수령 자신의 몸가짐을 가다듬는 일부터 은혜 베푸는 일까지 6조로 나누어 논하고 있다.
▶칙궁(飭躬) : 자신의 몸가짐을 가다듬는 일.

 

고려 때 서침(徐忱)이 울진 현령(蔚珍縣令)이 되어 선정(善政)이 많았는데, 그는 소를 타고 다니면서 농사를 권면하였다.

 

박세량(朴世樑)이 신창 현감(新昌縣監)으로 있을 때에 모든 일이 간략하였다. 관아에 들 때도 북ㆍ피리 소리가 없었고, 밖에 나갈 때에도 호위하는 하인이 없었으며, 병이 났을 때가 아니면 여러 가지 반찬을 먹지 않았고, 큰 더위가 아니면 일산(日傘)을 받지도 않았다. 매양 농사철이 되면 이속들이 농사일 보러 가는 것을 다 들어주어 관아를 지키는 자는 겨우 몇 사람뿐이었고, 필요한 땔나무 같은 것은 종들을 시켜서 마련하게 하였다. 틈이 나면 단건(短巾)에 편복(便服) 차림으로 지팡이를 짚고 거닐었는데 때로는 백성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박세량(朴世樑) : 조선 문신(1628 ~ 1693). 신창 현감, 영천 군수(榮川郡守) 등을 역임하였는데,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이 생불(生佛)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유의(柳誼)가 홍주 목사(洪州牧使)로 있을 적에 조랑말 한 필에 종 둘을 데리고 야외로 순행하다가 들밥을 가지고 가는 아낙네를 만나면 밥보자기를 벗겨 보아 나물반찬이 보잘것없으면 그 게으름을 경계하고 반찬이 너무 많으면 그 지나침을 나무라니 백성들이 크게 기뻐하였다.

▶유의(柳誼) : 조선 문신(1734 ~ 미상). 승지, 병조참판, 홍주 목사를 지냈다.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 다산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