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안 짓고 시골살기

사과 공부

從心所欲 2021. 10. 3. 14:17

일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간간이 친구네 과수원에 불려 다닌 지가 벌써 4년째다. 그런데도 아직 사과 종류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 관심이 없어서일 것이다.

비교적 이름이 익숙한 아오리나 부사도 먹을 때 색깔로 어림짐작하는 수준이라, 과수원에 열린 사과를 보고 품종을 알아낼 실력이 없다. 그래서 아오리를 따야 하는데 아직 익지도 않은 다른 품종의 사과를 따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4년이나 드나들면서도 여전히 친구에게 물어봐야 하는 처지가 민망해서, 올해는 꼭 잘 기억하리라 다짐을 하며 열심히 머릿속에 저장중이지만, 겨우내 잊고 있던 나무들을 내년에 다시 본다고 해서 제대로 알아볼 것 같지는 않다.

 

친구네 과수원엔 사과 품종이 많다. 아오리나 홍로, 부사와 같이 익숙한 이름부터 썸머킹, 시나노스위트, 황옥, 아리수, 메코이히메 같은 기억하기도 난감한 이름들이 있다. 아마도 친구가 귀농할 때 호기심으로 여러 품종을 심었던 것 같다.

대충 주워들은 말과 4년간의 겉핥기에 의하면 아오리, 썸머킹은 성숙이 빠른 품종인 조생종(早生種)이고, 아리수, 홍로, 시나노스위트는 중생종(中生種), 그리고 부사는 대표적인 만생종(晩生種)이다. 만생종은 늦되는 품종을 가리킨다. 조생종은 빠르면 7월 중하순부터 시작하여 8월 중순까지가 수확 시기이고, 중생종은 8월 하순부터 9월 하순, 만생종은 10월 중순이라 한다.

지난주에 친구네 과수원의 시나노스위트 수확하는 일을 도왔다.

 

[시나노스위트]

 

사과는 모두 빨갛다는 생각은 편견이다. 과수원 한쪽 밭의 4년생 황옥나무들에 달린 사과들이 햇빛을 받아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익을수록 노란색으로 변하는 황옥은 새콤달콤함이 특색이다.

 

[황옥]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지만 사과는 나무에서 바로 따서 먹을 때가 가장 맛있다. 그리고 그 다음이 낙과다. 제대로 익었는데 미처 따주지 않아서 저절로 떨어진 사과들이다. 이런 사과들을 일하면서 간간이 주워 먹기도 하는데 이제까지 먹고 나서 후회한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다 맛있었다.

과수원 주인들은 가장 맛있는 사과만 골라 먹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과수원 주인은 좋은 사과는 팔고 흠이 있거나 상품이 안 되는 사과만 먹는다. 과수원 주인들은 그런 사과나 낙과로 자신의 사과 맛을 본다.

 

높은 가지의 사과를 따다 보면 아무리 조심을 해도 따고 있는 옆가지에서 사과가 떨어지기도 한다. 작은 것은 그래도 덜하지만 큰 사과가 떨어지면 가슴이 철렁한다. 과수원 주인에게도 미안하지만 여태까지 매달려 고생한 사과에게도 미안하다. 떨어진 사과가 크고 좋으면 사과를 주워 사과 바구니에 넣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과수원 주인은 절대 그러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일인데도 떨어진 사과가 너무 아까워서 차마 버릴 수가 없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결국 주인에게 폐가 된다.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떨어지면서 부딪힌 곳에 멍이 들어 며칠 내에 짓무르기 때문이다. 그런 사과를 멀쩡한 사과 속에 섞어놓으면 그 사과를 받아본 고객이 이 과수원을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결국 손님 끊어놓는 짓이다.

 

 

뒷줄 왼쪽 구석의 사과는 호박만한 크기로 정말 보기 드물게 큰 사과다. 잘 익은데다 너무 무거워서 떨어진 듯하다. 뒷줄 오른쪽과 앞줄 왼쪽 사과도 보통 크기가 아닌데 다음에 딸 생각으로 햇볕 잘 받게 하려고 꼭지를 돌려놓고 돌아섰더니 바로 떨어졌다. 어찌나 아깝던지... 주워두었다가 친구에게 이실직고하고 들고 왔다. 작은 것은 크기가 작아 팔 수 없는 것이지만 나무에 달린 새빨간 모습이 너무 고와 하나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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