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안 짓고 시골살기

사과가 빨갛다고 맛있는 것은 아니다.

從心所欲 2021. 9. 1. 14:57

추석이 다가온다.

과일, 그 중에서도 사과는 가장 일상적인 추석선물의 하나다.

백화점에서 선물용으로 파는 사과들은 하나 같이 빨갛고 크다. 따라서 값도 비싸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런 사과들은 보기에 먹음직하면 맛도 좋다는 속설을 깨뜨린다.

이 사과들은 애초에 맛있는 사과를 생산해내기 위해 재배된 사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과 특유의 향도 제대로 나지 않는다. 그냥 보기에만 좋은 사과일 뿐이다.

 

각 지역 농협에서 사과를 수매할 때 등급을 나누는 기준은 색깔과 크기다.

겉모양만 좋으면 맛과는 상관없이 높은 등급을 받고 높은 가격을 받는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말하면 농사짓는 입장에서는 굳이 사과 맛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맛있는 사과보다는 보기 좋은 사과를 키워내야 더 소득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나무 밑에다 은박지를 깔고 색깔을 더 붉게 만드는 약도 친다.

사과의 맛보다는 겉모양을 위해 그런 수고를 한다는 게 안타깝다.

 

물론 자연적으로 익어 빨개진 사과는 덜 익은 사과보다야 맛있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지만 그 또한 어떤 환경에서 자랐느냐에 따라 맛이 다르다.

일반적으로는 일교차가 심한 지역이라야 당도가 높아진다고 한다.

소비자들이 보기 좋은 사과를 찾는 대신 맛있는 사과를 찾아야 농사짓는 방법도 바뀐다.

모양과 색깔에 흠이 있는 사과라도 맛으로 사과를 골라줘야 농부의 시름도 덜고 쓸데없는 수고도 줄일 수 있다.

 

시장에서 파는 아오리 사과는 항상 파랗다.

퍼석퍼석하다는 평을 받으면서도 가장 일찍 수확되는 덕분에 붉은색 사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런대로 사과 대접을 받는 품종이다. 그런데 이 파란 아오리를 좀 더 익혀 궁둥이가 노랗게 변하고 위쪽이 붉은 색을 띄게 되면 전혀 다른 레벨의 정말 맛있는 사과가 된다.

 

[익어가는 아오리]

 

아오리를 이렇게 익히려면 최소 보름에서 20일 정도 수확시기를 늦추어야 한다. 그러자면 낙과도 생기고 손도 더 간다. 게다가 뒤이어 홍로 같은 다른 품종의 사과가 나오니까 농사짓는 입장에서는 그때까지 아오리를 놓아두지 않는다. 그래서 시중에서는 이런 아오리 사과를 볼 수도 먹을 수도 없다.

익어가는 아오리에는 벌과 새가 쉬지 않고 찾아온다.

1년에 사과 한두 조각 입에 넣을까 말까 했던 사람이 붉은색이 도는 아오리를 먹어본 뒤부터는 매년 이때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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