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뿌리

계(契)

從心所欲 2021. 12. 20. 08:38

옛 사람들은 무슨 모임을 갖고 나면 그것을 그림과 글로 남겼다. 책 형태로 남기면 계첩(契帖)이라 했고 병풍이면 계병(契屛)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금은 ‘계’라고 하면 주부들이 목돈을 마련하는 방법으로 조직되는 계모임부터 연상이 되는 까닭에, 선비들의 모임을 기록한 것에 왜 ‘계(契)’자가 들어가는 것인지 의아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계(契)’자가 ‘(연분이나 인연을) 맺는다’는 뜻을 갖는 한자임을 감안하면 ‘계(契)’는 지금의 동호회와 같이 모임을 뜻하는 ‘회(會)’의 뜻도 함께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대대로 우리나라에 계는 그야말로 셀 수 없을 만큼 많고 다양했다고 한다. 주부들이 돈을 목적으로 하는 계는 수많은 형태의 계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계는 우리나라에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상부상조의 민간협동체라는 해석이 있기도 하지만, 공동체보다는 이익집단 내지 기능집단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즉, 계는 촌락이나 도시와 같은 지역사회의 조직이 아니라, 지역사회 내부에서 특정한 이해를 공동으로 추구하기 위하여 조직된 모임이라는 것이다. 그 특정한 이해란 다양하다. 경제적인 것도 있지만 단순한 친목이나 사교적인 이유도 있었다.

 

계는 그 기원이 불확실하고 종류가 다양한데다 기능도 복잡하여 간단히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삼국사기에 따르면 경제적 이유에서 조직된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계(契)는 그 기원을 신라시대의 가배계(嘉俳契)나 향도계(香徒契)에 두었다. 가배계는 신라 초기 유리왕 때 경주(慶州)의 행정 구역인 육부(六部)를 둘로 나누어 왕녀(王女) 두 사람에게 부내(部內)의 여자를 거느리고 8월 보름까지 한 달 동안 길쌈을 하게하고 그 결과에 따라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대접하며 노래와 춤을 즐겼던 일을 가리킨다. 이를 ‘가배(嘉俳)’라고 했으며, 이러한 풍습에서 비롯되어 오늘날의 한가위[秋夕]가 되었다는 것이다. 근래까지 주부들이 하던 계의 근원을 여기에서 찾는다고 하니, 연조는 가장 오래된 셈이다.

 

향도계(香徒契)는 불사(佛事)와 신앙 활동을 위한 종교적 결사체(結社體)로 시작되었다가 이후 장례시의 부조(扶助)를 위한 향촌공동체로 변모했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는 장성한 자녀를 혼인시키는 일과 사람이 죽어 장사지내는 일은 가난한 백성들로서는 혼자 감당하기 힘든 경제적 부담이었다. 그래서 나이가 많은 부모를 모신 사람들끼리 부모의 상사(喪事) 때에 서로 돕자는 목적으로 조상계(助喪契)나 상포계(喪布契)가 만들어졌다. 또한 혼기를 앞둔 자녀들이 있는 사람들은 혼사 때에 서로 돕는 목적의 혼수계(婚需契), 조혼계(助婚契) 등을 조직하였다. 그런가하면 아예 집안의 길흉사(吉凶事)를 모두 합쳐 서로 돕는 혼상계(婚喪契)도 생겨났다.

 

장례와 혼례 외에도 전통사회에서는 돌아가신 조상을 모시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명분을 중시하는 사회였던 만큼 시향제(時享祭)나 절사(節祀)처럼 조상의 묘에서 지내는 묘제(墓祭)를 비롯하여 묘를 관리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다른 가문에 부끄럽지 않아야 했다. 당연히 그에 대한 비용도 적지 않았으므로 문중(門中)의 겨레붙이끼리 계를 조직하여 부담을 나누었는데 이런 계를 종계(宗契)라고 하였다.

 

단순히 사교(社交)를 목적으로 한 것으로는 고려 때 유자량(庾資諒)이라는 인물이 늙어서 벼슬에서 물러난 뒤 은퇴한 다른 재상들과 기로회(耆老會) 성격인 교계(交契)를 만든 것이 기록상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한다. 기로회는 조선에 들어서 국가에서 기로소(耆老所)를 제도화하였지만 사적으로도 경로회(敬老會) 성격의 많은 기로회가 있었고 또 계첩들을 남겨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원기로회계첩(梨園耆老會契帖)>, 국립중앙박물관 ㅣ 1730년 스물 한 명의 노인들이 이원(梨園)에 모여 시가를 읊으며 친목을 도모한 것을 기념하여 제작된 것이다. 이원(梨園)은 음악기관인 장악원(掌樂院)의 별칭으로 옛 명동에 있었다.]

 

[<이원기로회계첩(梨園耆老會契帖)> 中 기로회도, 국립중앙박물관 ]

 

[<이원기로회계첩(梨園耆老會契帖)> 기로회도 부분]

 

나이가 같은 사람끼리의 모임인 동갑계(同甲契)도 있었다. 줄여서 갑계(甲契)라고도 하고 동경계(同庚契)라고도 한다. 경(庚)은 ‘나이’라는 뜻을 가진 한자다.

 

[「수갑계첩(壽甲稧帖)」중 계회도, 지본담채, 29.3cm, 가로 37.4cm, 국립중앙박물관 ㅣ 무인년(戊寅年)인 1758년에 태어난 중인(中人) 22명이 모여 갑계를 조직했는데 명칭이 수갑계(壽甲稧)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57세가 되던 1814년에 계원인 정윤상(丁允祥)의 중부 약석방(藥石坊) 집에서 모임을 갖고 「수갑계첩(壽甲稧帖)」을 만들었다.]

 

[「수갑계첩(壽甲稧帖)」 계회도 부분]

 

이렇게 한가로운 계가 있었는가 하면 처절하고 절박한 형편의 계들도 있었다. 조선의 군역(軍役) 대상자들 가운데 정병으로 뽑히지 않은 사람들은 복무에 나가지 않는 대신 부담하였던 세금이 있었다. 베나 무명으로 납부했기에 군포(軍布)라고 하였는데, 제도와 시행상의 문제로 그 피해가 너무 커서 각 촌락에서는 자구책으로 공동납세를 위한 군포계 혹은 동포계(洞布契)를 만들기도 하였다. 또한 호포법이 실시된 뒤에는 호포계(戶布契)도 등장했다.

 

그 외에도 토지를 공동 경작하여 그 수확을 공동 분배하는 농계(農契), 농사짓는 소를 공동으로 사용하는 우계(牛契), 농기구의 공동 구입과 사용을 위한 농구계(農具契) 등이 있었고, 역모 조직으로 드러난 정여립(鄭汝立)의 대동계(大同契), 폭력조직인 검계(劍契) 같은 특수한 계들도 있었다.

조선 후기 중인들의 시 모임으로 유명했던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를 비롯하여 벽오사(碧梧社), 육교시사(六橋詩社) 등의 시계(詩契) 역시 계의 한 형태였던 것이다.

 

 

 

참고 및 인용 : 국립중앙박물관, 우리말 어원 500가지(이재운, 박숙희, 유동숙, 2012,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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