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뿌리

조선의 기생 25 - 권번

從心所欲 2021. 9. 18. 08:14

기생조합은 1918년에 일본식 교방(敎坊)의 명칭인 권번(券番)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당시 기생이란 직업은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의 허가제(許可制)였기 때문에 모든 기생들은 권번에 기적을 두어야만 기생활동을 할 수 있었다. 권번은 기생들이 요정에 출입하는 것을 지휘, 감독하고 손님에게 받은 화대(花代)와 기생들이 정부에 바쳐야하는 세금까지도 관리했다. 아울러 권번은 동기(童妓)에게 노래와 춤을 가르쳐 직업적인 기생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의 역할도 담당했다.

 

이에 따라 광교조합은 한성권번(漢城券番)으로, 다동조합은 조선권번(朝鮮券番)으로 바뀌었고, 두 조합 뒤에 생긴 경화조합과 한남조합은 각기 대동권번(大同券番)과 한남권번(漢南券番)으로 개칭(改稱)되었다. 이 4개의 권번이 19010년대 한성의 기생들을 관리했다.

한성에 이어 평양, 광주(光州), 남원, 달성(達城), 경주, 개성, 함흥 지방에서도 권번이 설립되었고, 그 중에서도 평양에 있던 기성권번(箕城券番)이 가장 유명했다.

 

각 도시마다 생긴 지방 권번 중에서 가장 뛰어났던 평양의 기성권번(箕城券番)에는 학감(學監), 부학감(副學監)과 약간 명의 교사가 기생교육을 담당했다. 평양 기생학교의 원 명칭은 '평양 기성권번(箕城券番) 기생양성소'였고 이 학교의 교장은 기성권번 사장이 겸임하였다. 배우는 기생들은 매월 월사금을 내야했으며, 수업연한은 3년이었다. 학기는 제1학기는 4월 1일부터 8월 31일, 제2학기 9월 1일부터 12월 31일, 제3학기 1월 1일부터 3월 31일로 되어 있었다. 학습기생의 입학자격은 8세부터 20세까지였고, 수업이 부진하거나 행실이 단정하지 못한 학생은 퇴학을 당했다. 3년 과정을 마칠 때는 졸업시험인 배반(排盤)에 통과해야만 기예증(技藝證)을 받아 기생활동을 할 수 있었다. 학과목은 시조(時調)·가곡(歌曲)·검무(劍舞)·우의무(羽衣舞)·가야금·거문고·양금(洋琴)·노래·춤·한문(漢文)·시문(詩文)·서(書)·행서(行書)·해서(楷書)·도화(圖畵)·사군자(四君子)·산수(山水)에다 일어(日語)와 독본(讀本), 회화(會話) 과목까지 다양했다. 그러나 3년이란 기간에 이 모든 과목을 이수하기는 불가능해 보여 각자의 재능에 따라 전공 과목은 따로 선택하여 공부했을 것으로 보인다. 

 

[평양기생학교, 1916년]

 

[일제강점기 엽서 : 평양기생학교 무용수업, 국립민속박물관]

 

[일제강점기 그림엽서 : 평양기생학교의 노래수업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일제강점기 그림엽서 : 평양기생학교의 수업 장면, 국립민속박물관]

 

[일제강점기 엽서 : 평양기생학교 교사전경, 국립민속박물관]

 

[일제강점기 엽서 : 평양기생학교 교사전경, 국립민속박물관]

 

[일제강점기 엽서 : 평양기생학교 그림수업]

 

후기에 이르면 신식 댄스도 가르쳤다고 한다. 졸업 후에는 70% 정도가 서울이나 신의주, 대구와 같은 외지로 진출하였고, 평양에서는 대동강 부근에 위치했던 학교 부근의 10여 군데 대규모 요릿집에서 활동하였다고 한다.

권번은 이렇게 기생의 양성과 공급의 기능을 하는 한편 전통예능의 전문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도 같이 감당하였다.

 

[1930년대의 진주기생학교 수업 모습]

 

아래는 1936년 삼천리 잡지 8권 6호에 실린 <명기영화사(名妓榮華史) 조선권번(朝鮮券番)>이란 글의 앞부분으로 조선권번을 이끌어 온 하규일이라는 인물을 조명하였다. 

 

                  名妓榮華史 朝鮮券番

                                       낭낭공자(浪浪公子)

서울장안에 기생권번(妓生券番)이 몇이던가?
조선권번(朝鮮券番)이 있고
한양권번(漢陽券番)이 있고
종로권번(鍾路券番)이 있다.
이 세 개의 기생권번에는 그러면 도대체 얼마나 기생들이 있는가?
한 권번에 근 오백(五百)명, 세 권번이면 천오백 명(千五百名)의 기생들이 있다.

기생권번이란 한마디로 말한다면 '기생'을 만들어내는 기생학교이다. 이들 권번에서는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양금이면 양금, 모두가 제각기 선생이 앉아 있어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웃으며 욕해가며 기생들을 기르는 데가 여기다. 그러면 조선에 기생이 언제부터 있어 왔던가하면 그야 역사가들의 알 바로서 아마 신라, 백제, 고구려의 삼국시대부터 있어왔다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고려 때에야 비로소 완전한 기생이 있었다고 하나 이런 것은 우리들의 알 바가 아니라, 다만 조선은 자고(自古)로 기생이 하도 유명하여 왔던 것만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요, 누구나 아는 일이다.

궁안에 무슨 연회(宴會)가 있을 때도 기생. 고관대작이나 돈푼 있는 풍류객들에게도 거저 기생. 이러한 기생들도 그 옛날엔 다만 ‘기생서방’이 있어 기껏해야 한집에 사오명(四五名)이 아니면 오륙명(五六名)이 모이면 대작이고 돈푼이나 발겨먹자는 야비한 수단을 모르는 깨끗한 ‘기생’, 도의 품성을 기르기에만 힘을 쓰는 한 개의 예술가들이었다. 이 자리에서는 이 세 권번 중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되고, 유명한 기생을 많이 이 강산(江山)에 내보낸 ‘조선권번’을 먼저 찾아, 한 때에 그 이름이 휘날리던 유명한 기생들의 영화사(榮華史)를 다시금 한번 더듬어 볼까한다. 그러면 ‘조선권번’의 연혁(沿革)은 어떠한 길을 밟아 왔나부터 간단히 적어 본다.

개명 이후 모든 제도가 일신하고 새로워지는 통에 이 기생에 대한 제도도 새로 생겨났던 것이다. 그전에 기생들은 기생서방에게 매달려서 일생을 기생으로 그 서방에게 모든 것을 다 바쳐 오던 지난날의 서방제도를 없이 하고 새롭게 기생권번을 만들었던 것이니 이것이 명치사십삼년(明治四十三年), 하규일(河奎一)씨와 그밖에 몇몇 분이 널리 전선으로 기생을 모집하여 소위 기생조합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때에 모여온 기생들이란 대부분이 평양기생들이었다. 이것이 대정팔년(大正八年)에 와서 비로소 대정권번(大正券番)이란 이름으로 오늘의 조선권번의 전신(前身)이 되었던 것이다.

명치사십삼년(明治四十三年)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조선권번은 오로지 하규일(河奎一)씨의 공로이요 꾸준한 지도가 있었다한다. 또한 이 권번의 초창기로 오늘날까지 하규일(河奎一)씨의 손 밑에서 자라난 기생이 수삼천명(數三千名)을 헤아린다고 하니 실로 조선기생권번사의 첫 페이지를 이루는 하규일(河奎一)씨의 존재는 뚜렷한 바가 있다 할 것이다. 지금에 하규일(河奎一)씨는 조선권번을 움직이는 한 주인으로 되었다.
▶명치사십삼년(明治四十三年) : 명치(明治)는 일왕 무쓰히토의 재위기에 사용된 연호(1868~1912년). 43년은 1910년
▶대정(大正) : 일왕 요시히토의 연호. 대정 1년은 1912년. 대정 8년은 1919년.

 

글에 나오는 하규일(河圭一)은 대한제국 말에 한성부소윤(漢城府少尹)을 지냈던 관리로, 1909년의 다동조합 설립에도 깊이 관여하여 기생들을 교육했던 인물이다. 1911년에 정악(正樂)을 유지, 보급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 전문음악교육기관인 조선정악전습소(朝鮮正樂傳習所)의 학감(學監)을 맡았으며, 후에는 이왕직아악부의 촉탁에 임명되어 아악생들에게 가곡, 가사, 시조 등 조선의 정가(正歌)를 전수하는 등 전통 가악의 보존과 후진 양성에 큰 공을 세운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권번 가곡반 졸업 기념사진, 1938년]

 

이런 교육을 받은 일제강점기의 기생들은 전통 가무문화의 계승자인 동시에 연예인이었다. 기생들은 극장에서 공연을 했고 그들의 음악은 축음기 레코드로 발매되었으며 라디오 방송에서도 흔하게 방송되었다. 기생들은 영화배우로도 출연하고 광고모델로도 등장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얻는 기생들이 출현하였다.

 

 

 

참고 및 인용 : 기생 이야기(신현규, 2007, 살림출판사), 한겨레음악대사전(송방송, 2012, 보고사), 문화원형백과(2004,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민족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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