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은 임인년(壬寅年)으로 호랑이 해, 그중에서도 ‘검은 호랑이’의 해다.
호랑이는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예부터 산을 지키고 다스리는 산군(山君)으로 여겨지던 영물이다. 지금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절 한 구석에는 산신각(山神閣)이 있고, 그 안에는 산신령과 함께 호랑이가 그려진 탱화가 걸려 있다. 산신각은 전통적으로 자식과 재물을 기원하는 산신 기도를 드리던 장소다.
호랑이를 그린 옛 그림은 많다. 그 가운데서도 고 오주석선생은 김홍도가 그린 ‘소나무 아래의 호랑이’ 그림을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호랑이 그림으로 꼽았다.
호랑이 특유의 민첩하면서도 유연한 생태를 그대로 살려냈으며 수천 번의 붓질을 통해 그려낸 극사실적인 호랑이의 털도 경이롭고, 화폭을 구성하는 포치(布置)도 뛰어나다는 것이다.
김홍도는 이 그림과 짝이 될 만한 ‘대나무 아래 호랑이’ 그림도 남겼다.
예전 조선시대에는 왕이 궁중의 관료들에게 신년을 송축하는 의미로 그림을 하사했다. 이런 그림들을 세화(歲畵)라고 불렀다. 실록에는 세화에 대하여 ‘세시(歲時)에 미리 화사(畫師)로 하여금 각기 화초·인물·누각(樓閣)을 그리게 하고, 그림을 아는 재상에게 명하여 그 우열(優劣)을 상하(上下)의 등급으로 매기게 하여 부록(付錄)하고, 그 그림은 골라서 내용(內用)으로 하고, 나머지는 재상과 근신들에게 하사하는 것’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내용(內用) : 궁중용. |
민간에서도 새해가 되면 집 벽이나 대문에 닭과 호랑이의 그림을 붙였다. 원래는 정초에 귀신을 물리치는 벽사(辟邪)의 목적으로 양(陽)의 성질을 가진 닭의 피를 문에 바르거나 닭 머리를 문에 걸어 두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것이 닭 그림으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또한 음력 정월은 십이지 중 호랑이에 해당하는 인월(寅月)이다. 그래서 백수의 왕인 호랑이의 용맹성을 빌어 재액을 물리칠 수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호랑이 그림도 그려 붙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풍속을 정리하고 설명한 세시풍속집인 『동국세시기』에도 “일반 백성들은 바람벽에 닭 그림과 호랑이그림을 붙여 액을 물리친다.”고 했다.
호랑이 부적은 삼재를 쫓고 자손창성을 도우며 업장(業障)을 소멸케 하고 벼슬길을 열어주는 효험이 있는 것으로 믿어졌다. 민화로 그려지는 호랑이 그림은 악귀를 물리칠 뿐만 아니라, 임신부에게는 태교의 방편으로도 쓰였다는 주장도 있다. 화가들이 그린 호랑이그림은 그 용맹성과 위용에 초점이 맞춰진 반면 민화에 등장하는 호랑이들은 희화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민화 속의 호랑이는 대부분 까치와 함께 그려진다. 이에 대해서는 까치가 신(神)에게서 받은 사람들의 길흉화복(吉凶禍福)에 대한 소식을 호랑이에게 전해주는 전령 노릇을 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이런 그림들 속의 호랑이들은 하나같이 사팔뜨기나 멍청한 모습들로 그려졌다
아래 그림은 호랑이가 위에서 밑으로 뛰어내리는 모습을 그린 듯한데, 얼핏 호랑이가 비보잉(b-boying)을 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참고 및 인용 : 한국세시풍속사전(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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