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회도 3

독서당계회도

교통방송을 듣다 보면 독서당길이 자주 언급된다. 독서당길은 성동구 응봉동에서 용산구 한남동 순천향대학교병원 부근까지에 이르는 간선도로이다. 워낙 익숙해진 이름이라 별 다른 생각없이 넘길 수도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독서당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궁금할 수도 있는 일이다. 조선 시대에는 젊고 유능한 문신(文臣)들이 학문에 더욱 정진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라는 것이 있었다. 사가(賜暇)는 관리의 휴가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가독서제는 관청업무는 하지 않고 오직 학문에만 힘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도이다. 세종 때 집현전(集賢殿) 학사들을 대상으로 처음 실시된 제도다. 기간은 짧게는 1개월이 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1 ~ 2년이 되기도 하였다. 사가독서제가 처음 실시된 세종 때에는 독서를 ..

우리 옛 그림 2022.06.24

북한산에서의 계회(契會)

조선 후기에 중인들이 인왕산 자락의 계곡에서 시사(詩社)를 연 일이나 관리들이 남산에서 계회(契會)를 가진 일들은 많은 그림과 기록을 통하여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런데 인왕산만큼은 아니지만 북한산에서도 계회나 시사를 갖기도 했던 모양이다. 지금의 북한산이야 인왕산이나 남산처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쉽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이지만 예전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도성 밖에 있는 데다, 산에 이르는 길조차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돌고 돌아야만 했기 때문에 당일로는 다시 도성에 돌아올 수도 없는 산이었다. 1857년에 안시윤(安時潤)이라는 인물과 그 벗들이 계를 이루어 음력 3월 보름에 북한산의 중흥사(重興寺)에 묵으면서 모임을 가졌다. 그리고 그 일을 기록하고 그림으로 그려 「금란계첩(金蘭契帖)」이라..

우리 옛 뿌리 2021.02.16

병풍 1 - 계병(稧屛)

조선시대의 서화(書畵)는 족자, 두루마리, 첩(帖), 병(屛) 등의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어왔다. 병(屛)은 후세에 와서 병풍(屛風)으로 불리면서 바람을 막는 용도가 더 강조되었지만, 원래는 중국 주나라의 천자가 높이 8척의 판에 자루가 없는 여러 개의 도끼를 그리거나 수놓아 뒷벽을 장식한 부의(斧扆)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의 왕 어좌 뒤에 배설되었던 일월오봉병(日月五峯屛)처럼 장엄(莊嚴)장식용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병(屛)이 서화의 장황(粧潢) 형식의 하나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제작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아무래도 다른 형태보다는 제작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조선 초기에는 주로 왕실에서 제례나 혼례 또는 제왕 교육용으로 제작되었다. 하지만 왕실에서조차 병풍을 사치의 대상으로 생각했..

우리 옛 병풍 2020.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