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에 중인들이 인왕산 자락의 계곡에서 시사(詩社)를 연 일이나 관리들이 남산에서 계회(契會)를 가진 일들은 많은 그림과 기록을 통하여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런데 인왕산만큼은 아니지만 북한산에서도 계회나 시사를 갖기도 했던 모양이다. 지금의 북한산이야 인왕산이나 남산처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쉽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이지만 예전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도성 밖에 있는 데다, 산에 이르는 길조차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돌고 돌아야만 했기 때문에 당일로는 다시 도성에 돌아올 수도 없는 산이었다.
1857년에 안시윤(安時潤)이라는 인물과 그 벗들이 계를 이루어 음력 3월 보름에 북한산의 중흥사(重興寺)에 묵으면서 모임을 가졌다. 그리고 그 일을 기록하고 그림으로 그려 「금란계첩(金蘭契帖)」이라는 첩을 만들었다.
중흥사는 북한산 노적봉 아래에 있는 절이다. 창건 연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고려 초로 추정하고 있다. 1713년에 북한산성을 축성할 때에 30여 칸에 불과하던 중흥사를 증축하여 136칸 규모의 대찰(大刹)이 되었다.
당시 조선은 8도의 사찰에 영을 내려 1년에 6차례에 걸쳐 번갈아 의승(義僧)을 뽑아 올리게 하여 북한산의 11개 사찰에 주둔시키면서 산성을 지키도록 하였었다. 승군(僧軍)의 정원은 360명으로 11개 사찰에는 각각 수승(首僧) 1인과 승장(僧將) 1인을 두었으며, 이들을 총지휘하는 본부로 승영(僧營)을 설치하고 승대장(僧大將) 1인을 임명하여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을 겸임하게 하였다. 중흥사는 바로 승대장이 머물렀던 북한산성의 승영(僧營)이었다.
‘금란(金蘭)’은 ≪주역(周易)≫ 계사상전(繫辭上傳)에, “군자의 도는 혹 나가기도 하고 혹 처하기도 하고, 혹 침묵하고 혹 말하기도 하나, 두 사람의 마음이 같으면, 그 날카로움이 쇠[金]를 끊도다. 같은 마음의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 같도다.”라고 한 데서 유래한 친구간의 두터운 정의(情誼)를 이르는 말이다.
「금란계첩(金蘭契帖)」의 서문을 쓴 안시윤에 대해서는 중인 이라는 사실 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다. 경아전(京衙前) 서리였다는 주장도 있다. 글에는 다른 참석자들의 호가 등장하지만 역시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로 이 계회는 중인들의 사적인 모임이거나 경아전 서리들의 계회였을 가능성도 있다.
계첩은 1면에 금란계장(金蘭契藏)이라는 제서(題書)를 예서로 쓰고, 2, 3, 4면에 서문을 싣고, 5면에 계회 장면을 그렸다.
글 중에 안시윤은 계첩을 만드는 뜻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우리들은 이미 나이가 많다. 꽃이 피는 아침과 달이 뜨는 저녁에 나란히 자리를 함께 하고, 무성한 숲에 앉거나 맑은 물에 발을 담그면서 산나물 들나물로 안주를 만들고 한 말 술로 즐거워하며 우리들의 여생을 마친다면 태평성세의 은자(隱者)라고 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해는 서산에 지고 남아 있는 햇빛은 많지 않으니, 이 계를 후손에게 전하고 우리 자손들로 하여금 또한 오늘의 의미를 변함없이 이어가도록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남기는 큰 자취가 아니겠는가.”
북한산의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이 빙 둘러선 곳의 널찍한 바위 위에 열다섯 명의 인물들이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고, 그 앞쪽으로는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인물들 뒤로 보이는 건물들이 중흥사이다.
그림대로라면 계회원은 7명이고 아버지를 모시고 온 자제 넷, 스님 셋, 그리고 시동 하나다. 세 스님은 서문을 통해 중흥사 스님들인 것을 알 수 있다.
“중흥사에 太月, 道月, 漢坡堂이란 스님이 있는데, 그들의 인격은 소탈하면서 꾸밈이 없고 온화하면서 엄숙하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어도 어긋나는 점이 없으니 이것이 이른바 덕을 같이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참여를 허락하고 함께 즐거워하고 슬퍼한다면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이 계첩에 대한 연구자에 따르면 그림을 그린 이가 규장각 차비대령화원이었던 이한철(李漢喆)이라는 추정도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참고 : SmartK(한국미술정보개발원), 조선후기 중인(中人) 계회․아회도 연구(마대진, 2019), 국립중앙박물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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