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뿌리

자줏골에서의 무관 연회 - 탑동연첩(塔洞宴帖)

從心所欲 2021. 3. 7. 09:22

1803년 지금의 창신동 지역인 자줏골에서 무관들을 위한 잔치가 열렸다. 그리고 이 잔치를 기념하는 그림과 몇 편의 시로 구성된 첩이 <탑동연첩(塔洞宴帖)>이다. 유경원(劉璟源)이란 인물이 쓴 발문에 의하면 “병신년(1836년) 초춘(初春)에 내가 이름을 쓰고 첩을 만들어 병영에 두었는데, 이것은 계해년(1803년) 유람(勝遊) 때에 만든 것”이라고 하여 첩이 만들어진 시기는 잔치가 있은 훨씬 뒤임을 알 수 있다.

임유린(林有麟)이란 인물이 작성한 서문에 이 잔치의 내력이 들어있다.

 

【사또인 영안부원군 김조순(金祖淳)이 특별히 은택을 베푸시어 우리들 108명이 휴식하는 밑천으로 3섬의 쌀을 내려 주시어 감사하는 마음으로 춤추니 죽을 곳을 알지 못할 정도이다. 또한 부장인 전 첨사 김명숙(金命淑)이 원수(元帥)의 은혜를 따라 10관(貫)의 자금을 내리시니 우러러 감사하기 이를 데 없다.

 

때는 계해년 7월 2일, 자지산(紫芝山) 북쪽 기슭 탑동암(塔洞庵) 동쪽 숲(東林)에서 주연을 베풀었다. 도성(城市)을 빠져나와 옛 사찰(古寺)에 이르니 사방이 청산이오, 봉우리마다 흰 구름이라. 맑은 그늘에다가 지팡이와 신발을 쉬게 하고…(후략)】

 

여기서 사또라고 불리는 영안부원군 김조순(金祖淳)은 순조의 장인으로 당시 훈련도감(訓鍊都監)의 훈련대장 신분이었다. 따라서 이 잔치는 김조순이 자신의 휘하 무관들을 위로하기 위한 잔치였던 것이다. 훈련도감은 임진왜란 중인 1593년에 임시기구로 설치되었다가 점차 상설기구로 변모한 중앙군영이다. 처음에는 포군(砲軍)을 양성하기 위한 목적이었으나 이후 포수(砲手), 살수(殺手), 사수(射手)로 구성된 삼수군으로 발전하였다. 또한 본래 임무인 군사 훈련 외에 수도 방위와 국왕 호위의 임무도 수행하게 되었고 그 규모는 때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략 4천에서 5천명 사이로 조선 말기까지 유지되었다.

그런데 잔치에 모인 인원이 108명이라 하였으니 참석자들은 훈련도감의 주요 관원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들이 잔치를 연 곳으로 등장하는 장소인 자지산(紫芝山)은 옛 동대문 밖 지역에 있던 자지동천(紫芝洞泉) 일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낙산공원과 6호선 창신역 사이에 새로 복원된 지봉 이수광의 거처 비우당(庇雨堂) 뒤편 바위에 ‘자지동천(紫芝洞泉)’이라는 각자가 남아있다.

 

[자지동천 각자와 표석, 문화미래 이프 사진]

 

자지동천(紫芝洞泉)은 '자줏빛 풀 계곡에 있는 샘물'이라는 뜻인데, 이 샘물터를 기념하는 표석에는 ‘단종비 송씨가 비단을 빨면 자주색 물감이 들었다는 슬픈 전설이 어려 있는 샘’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수양대군에 의해 단종이 왕위에서 쫓겨나 강원도 영월로 귀양 간 후, 단종의 왕비였던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가 생활이 곤궁하여 이곳에서 보라색 물이 드는 자지초(紫芝草)라는 풀을 이용하여 동대문시장 상인들의 옷감을 염색해 주며 살았다는 이야기에 따른 것이다.

그 진위야 어쨌든 간에 이 일대는 자줏골, 혹은 자지동(紫芝洞)으로 불리던 곳으로, 예전부터 시인 묵객들이 자주 들리는 곳인 동시에 활쏘기를 하던 장소였다고도 한다.

 

[<탑동연첩> 중 그림 부분, 첩 전체 크기 17cm × 196cm, 서울역사박물관]

 

108명의 무관이 모였다고 했는데 그림에는 인물이 6명뿐이다. 그림은 잔치를 주선했던 김조순과 훈련도감의 고위관원이 따로 자리를 가진 모습을 그린 듯하다. 뒤쪽에 보이는 하얀 탑은 현재 종로2가 탑골공원 안의 원각사(圓覺寺) 십층석탑이다. 높은 건물이 없던 당시에는 동대문 밖 산자락에서도 이 탑이 이렇듯 우뚝하게 보였나 보다.

그림 왼쪽에 쓰인 제발은 ‘古寺何處在 來尋小塔斷’이다.

“옛 절은 어디 있는가. 찾아왔지만 소탑(小塔)은 자취가 없네.”

 

탑동암(塔洞庵)이라는 절의 자취가 사라져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적은 듯하다. 이 첩은 2012년 경매에 출품되었었는데 당시 이 그림의 작가를 이방운(李昉運)으로 소개했다. 이방운(李昉運, 1761-1822 이후)은 몰락한 양반가 출신의 조선 후기 화가이다.

 

<탑동연첩(塔洞宴帖)>은 그림에 이어 서문, 그리고 서문을 지은 임유린의 ‘이날 승려를 만나 잠시 대화하다 (此日逢僧暫話)’라는 시가 있고, 박창원(朴昌源)이란 인물의 5언율시와 7언율시 두 편에 이어 마지막으로 유경원(劉璟源)이 쓴 발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탑동연첩> 전시 사진]

 

[<탑동연첩> 중 서문 앞부분, 서울역사박물관]

 

[<탑동연첩> 중 서문 나머지 부분, 서울역사박물관]

 

[<탑동연첩> 중 임유린의 시와 박창원 시, 서울역사박물관]

 

[<탑동연첩> 중 유경원 발문, 서울역사박물관]

 

 

 

참고 및 인용 : 서울역사박물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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