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정집서 2

병풍 40 - 난정수계도

353년 3월 3일, 중국의 위진남북조 시대에 동진(東晋)의 우군장군(右軍將軍)이자 회계내사(會稽內史)로 있던 왕희지(王羲之)가 자신의 관할지역인 회계(會稽) 산음현(山陰縣)의 난정(蘭亭)에서 시회(詩會)를 가졌다. 난정(蘭亭)은 절강성(浙江省) 소흥부(紹興府)의 성(城)에서 서남쪽으로 27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하는데, 주변은 산이 높고 험하며 수풀이 무성했지만 죽림이 있고 맑은 냇물이 있는 곳이었다. 왕희지를 비롯하여 왕희지의 네 아들을 포함한 42인이 이곳에 모여 물가에 가서 몸을 씻어 상서롭지 못한 것을 씻어내는 불계(祓禊) 의식을 가진 뒤, 술을 마시며 시를 지었다. 26명의 문사가 37수의 시를 지었고, 이 시들을 모아 편집한 것이「난정집(蘭亭集)」이다. 왕희지는 이 「난정집」의 머리말인 서(..

우리 옛 병풍 2021.10.22

난정집서와 Don't Touch Me

왕희지(王羲之, 307 ~ 365)는 중국 고금(古今)의 첫째가는 서성(書聖)으로 존경받는 동진(東晋)의 서예가이다. 특히 그는 천하제일행서(天下第一行書)로 일컬어졌는데 그 중에서도 그가 쓴 는 왕희지 글씨 중에서도 ‘행서(行書)의 신품(神品)’이라고 불리며 이후 한·중·일 삼국의 서예가들 모두가 천하제일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353년 3월 3일 회계(會稽) 산음의 난정(蘭亭)에 당시의 명사 41명이 모여 시회를 갖았다. 그때 모임에 참석한 이들이 지은 시들을 모아 난정집(蘭亭集)이라는 시집을 만들기로 하여 왕희지가 이 시집의 서문을 썼다. 당시 왕희지는 술을 마신 가운데 글을 썼는데 글자는 모두 28행 324자였고 그 가운데 ‘지(之)’자가 모두 스무 자였다. 왕희지가 나중에..

흔적들 2020.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