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씨잡변 4

정도전 25 - 불씨잡변 서(序)와 발(跋)

정도전(鄭道傳)은 『불씨잡변』의 저술을 마친 뒤, 권근(權近)에게 서문을 부탁하였다. 그러나 수개월 뒤인 1398년 9월에 제1차 왕자의 난이 발생하고 이방원이 이끄는 세력에 의하여 죽음을 당하면서 『불씨잡변』은 간행되지 못하였다. 그 뒤 근 60년이 지나서 정도전의 유고(遺稿)가 족손(族孫) 한혁(韓奕)의 집에서 발견되었다. 이에 한혁이 같은 해 급제자인 양양 부사(襄陽府使) 윤기견(尹起畎)에게 이를 보였고, 내용에 감탄한 윤기견이 이를 간행하였다. 서(序) [권근(權近)] 내 일찍이 불씨(佛氏)의 설이 세상을 매우 미혹(迷惑)시키는 것을 근심하여 말하기를, “하늘이 하늘노릇을 하고 사람이 사람노릇을 하는 데에 있어서 유교와 불교의 설이 서로 같지 않다. 역상(曆象)이 있은 뒤로부터 한ㆍ서(寒暑)의 왕..

우리 선조들 2022.03.30

정도전 24 - 불씨잡변 벽이단지변

이단을 물리치는 데 관한 변[闢異端之辨] 요순(堯舜)이 사흉(四凶 요순 때에 죄를 지은 4명의 악한 즉 공공(共工)ㆍ환도(驩兜)ㆍ삼묘(三苗)ㆍ곤(鯀))을 벤 것은 그들이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은 좋게 꾸미면서 명령을 거스르고 종족을 무너뜨리기 때문이었다. 우(禹)도 또한 말하기를, “……말을 교묘하게 하며 얼굴빛을 좋게 꾸미는 자를 어찌 두려워하랴?” 하였으니, 대개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좋게 꾸미는 것은 사람의 본심을 잃게 하며, 명령을 어기고 종족을 무너뜨리는 것은 사람의 일을 망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이 제거하여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흉(四凶) : 중국 요순 때에 죄를 지은 4명의 악한 즉 공공(共工), 환도(驩兜), 삼묘(三苗), 곤(鯀). 탕(湯)과 무왕(武王)이 걸(桀)과..

우리 선조들 2022.03.23

정도전 23 - 불씨잡변 사불심근년대우촉

부처 섬기기를 극진히 할수록 연대는 더욱 단촉 되었다.[事佛甚謹年代尤促] 원화(元和) 14년에 불골(佛骨)을 경사(京師)에 맞아들여 왔는데, 이보다 먼저 공덕사(功德使)가 아뢰기를, “봉상사(鳳翔寺) 탑에 부처의 지골(指骨)이 있어 전하여 오는데, 30년 만에 한 번씩 탑문(塔門)을 열며, 탑문을 열면 그 해에는 풍년이 들며 백성들이 편안하게 지낸다고 합니다. 내년에 응당 탑문을 열 것이니 청컨대 맞이하여 오소서.” 하였으니, 이에 임금이 그 말을 따랐다. ▶원화(元和) : 당헌종(唐憲宗) 때의 연호(806년 ~ 820년) 이 불골(佛骨)이 경사(京師)에 이르렀을 때 궁중에 3일 동안을 두었다가 여러 절을 거쳐 가는데 왕공(王公)들과 사민(士民)들이 쳐다보며 받들어 시주하기를 남보다 뒤질까봐 두려워할 정..

우리 선조들 2022.03.16

정도전 22 - 불씨잡변 사천도이담불과

천도를 버리고 불과를 말함[舍天道而談佛果] 당대종(唐代宗)이 처음에는 그다지 부처를 중히 여기지 않았는데, 재상인 원재(元載)와 왕진(王縉)이 다 부처를 좋아했고 그 중에도 왕진이 특히 심하였다. 임금이 일찍이 묻기를, “부처가 보응(報應)을 말했다는데 과연 있느냐?” 하였다. 원재(元載) 등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국가의 운수가 장구한 것은 일찍이 복업(福業)을 심은 것이 아니면 무엇을 가지고 이르게 하겠습니까? 복업이 이미 정해지면 비록 때때로 작은 재앙이 있다 하더라도 마침내 해(害)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녹산(安祿山)ㆍ사사명(史思明)은 다 그 자식에게 죽음을 당했고, 회은(懷恩)은 군문을 나와 병들어 죽었고, 회흘(回紇), 토번(吐蕃) 두 오랑캐는 싸우지 않고 저절로 물러갔으니, 이것은..

우리 선조들 2022.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