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를 버리고 불과를 말함[舍天道而談佛果]
당대종(唐代宗)이 처음에는 그다지 부처를 중히 여기지 않았는데, 재상인 원재(元載)와 왕진(王縉)이 다 부처를 좋아했고 그 중에도 왕진이 특히 심하였다. 임금이 일찍이 묻기를,
“부처가 보응(報應)을 말했다는데 과연 있느냐?”
하였다.
원재(元載) 등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국가의 운수가 장구한 것은 일찍이 복업(福業)을 심은 것이 아니면 무엇을 가지고 이르게 하겠습니까? 복업이 이미 정해지면 비록 때때로 작은 재앙이 있다 하더라도 마침내 해(害)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녹산(安祿山)ㆍ사사명(史思明)은 다 그 자식에게 죽음을 당했고, 회은(懷恩)은 군문을 나와 병들어 죽었고, 회흘(回紇), 토번(吐蕃) 두 오랑캐는 싸우지 않고 저절로 물러갔으니, 이것은 다 사람의 힘으로 미칠 바가 아니오니, 어찌 보응이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사사명(史思明) : 당(唐)나라 때의 돌궐(突厥) 사람. 안록산이 반란을 일으키자 행동을 같이해 하북(河北) 지방을 평정하고 요양(饒陽)을 공략했다. ▶회은(懷恩) : 처음에는 공신이었으나 뒤에 회흘ㆍ토번을 포섭하여 반란을 꾀하였다가 병사함. |
임금이 이로 인하여 부처를 깊이 믿어 항상 궁중에서 중 1백여 명에게 밥을 먹여 주었으며, 도둑이 이르면 중으로 하여금 《인왕경(仁王經)》을 강(講)하여 물리치게 하고 도둑이 물러가면 후하게 상을 주니, 좋은 전답(田畓)과 많은 이익이 중 또는 절에로 돌아갔다. 그리고 원재(元載) 등이 임금을 모시고 부처의 일을 많이 말하니 정사와 형벌이 점점 문란하여졌다.
▶《인왕경(仁王經)》 : 법화경(法華經)ㆍ금광명경(金光明經)과 같이 호국 3부경(三部經)의 하나. |
진서산(眞西山)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대종(代宗)이 보응에 대하여 물었는데, 이때에 유자(儒者)를 정승의 자리에 두었더라면 반드시 ‘선하면 복을 받고 악하면 화(禍)를 받으며, 차[盈]면 이지러지고 겸손[謙]하면 더함을 받는다.’는 그런 이치를 되풀이해 아뢰어 임금으로 하여금 늠연(凛然)히 천도(天道)는 속일 수 없는 것임을 알아 덕을 닦는 데 스스로 힘쓰게 하였을 것인데, 원재(元載) 등은 일찍이 한 마디도 이에 언급한 바 없고 당초부터 복업을 심는 것으로 말하여, 국가의 운수가 장구(長久)한 것은 모두 부처의 힘이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너무나 천도(天道)를 속인 것이 아니겠는가?
저 당나라가 오랜 연대를 지나온 것은 태종(太宗)이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 공임은 숨길 수 없는 것이요, 환란이 많았던 이유는 천하를 얻을 때 인의(仁義)와 강상(綱常)에 순수(純粹)하지 못했고 예법(禮法)으로 보아서 부끄러워할 만한 일이 있었으며, 세대를 이은 임금들 중에는 사욕을 이겨내고 선을 힘쓴 자가 적은 반면, 정(情)대로 방자하여 이치[理]에 어긋난[悖] 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늘에는 떳떳한 도[顯道]가 있어 그 유(類)에 따라 나타낸다.’는 말이 이것을 이름이다.
원재(元載) 등이 천도(天道)를 버리고 부처의 인과설을 말하여 재앙(災殃)이나 상서(祥瑞)를 내리는 것은 하늘에 있지 않고 부처에 있으며, 다스리는 도(道)는 덕(德)을 닦는 데 있지 않고 부처를 받드는 데 있다고 하니, 대종(代宗)이 오직 배우지 못했으므로 원재(元載) 등이 미혹시킬 수 있었다.
또 저 안녹산(安祿山)ㆍ사사명(史思明)의 난은 양태진(楊太眞)이 안에서 좀 먹고, 양국충(楊國忠)ㆍ이임보(李林甫)가 밖에서 화를 빚어서 일어난 것이요, 그 난을 능히 평정한 것은 곽자의(郭子儀)ㆍ이광필(李光弼) 등 여러 사람이 제실(帝室)에 충성을 다하여 물리쳤기 때문이요, 그들이 다 자식에게 화를 당하였다고 하는 것은 안녹산ㆍ사사명 자신이 신하로써 임금에게 반역하였기에 그의 아들인 안경서(安慶緖)ㆍ사조의(史朝義)가 그의 아버지를 시역한 것이니, 이것은 천도(天道)가 그 유(類)에 따라서 응(應)하는 까닭이다.
▶양태진(楊太眞) : 양귀비. |
또 회흘(回紇)ㆍ토번(吐蕃)이 싸우지 않고 스스로 물러간 것은 또한 곽자의(郭子儀)가 몸소 오랑캐의 앞에 나아가서 꾀를 부려 반간(反間)한 덕택이니, 그 본말(本末)을 미루어 보면 모두 사람의 일에 말미암은 것인데, 원재(元載) 등은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 미칠 바가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그 속이고 또 속임이 더욱더 심하지 않은가?”
번역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1977, 조준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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