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3

병풍 40 - 난정수계도

353년 3월 3일, 중국의 위진남북조 시대에 동진(東晋)의 우군장군(右軍將軍)이자 회계내사(會稽內史)로 있던 왕희지(王羲之)가 자신의 관할지역인 회계(會稽) 산음현(山陰縣)의 난정(蘭亭)에서 시회(詩會)를 가졌다. 난정(蘭亭)은 절강성(浙江省) 소흥부(紹興府)의 성(城)에서 서남쪽으로 27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하는데, 주변은 산이 높고 험하며 수풀이 무성했지만 죽림이 있고 맑은 냇물이 있는 곳이었다. 왕희지를 비롯하여 왕희지의 네 아들을 포함한 42인이 이곳에 모여 물가에 가서 몸을 씻어 상서롭지 못한 것을 씻어내는 불계(祓禊) 의식을 가진 뒤, 술을 마시며 시를 지었다. 26명의 문사가 37수의 시를 지었고, 이 시들을 모아 편집한 것이「난정집(蘭亭集)」이다. 왕희지는 이 「난정집」의 머리말인 서(..

우리 옛 병풍 2021.10.22

북한산에서의 계회(契會)

조선 후기에 중인들이 인왕산 자락의 계곡에서 시사(詩社)를 연 일이나 관리들이 남산에서 계회(契會)를 가진 일들은 많은 그림과 기록을 통하여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런데 인왕산만큼은 아니지만 북한산에서도 계회나 시사를 갖기도 했던 모양이다. 지금의 북한산이야 인왕산이나 남산처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쉽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이지만 예전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도성 밖에 있는 데다, 산에 이르는 길조차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돌고 돌아야만 했기 때문에 당일로는 다시 도성에 돌아올 수도 없는 산이었다. 1857년에 안시윤(安時潤)이라는 인물과 그 벗들이 계를 이루어 음력 3월 보름에 북한산의 중흥사(重興寺)에 묵으면서 모임을 가졌다. 그리고 그 일을 기록하고 그림으로 그려 「금란계첩(金蘭契帖)」이라..

우리 옛 뿌리 2021.02.16

풍류와 가락 13 - 양반에서 중인으로

학자로서의 이미지가 워낙 강해서 그런지 다산 정약용이 말을 타고 달린다는 것은 사극에서나 나올 장면처럼 잘 상상이 안 되는 일인데, 그가 남긴 에는 그가 말을 타고 달린 기록이 나온다. 그것도 풍류를 즐기러 가기 위해서 그랬다는 것이다. 세검정이 자랑하는 빼어난 경치란 소나기가 내릴 때 폭포처럼 사납게 굽이치는 물살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비가 막 내리기 시작하면 대개 수레를 적셔가며 교외로 나가려 하지 않고, 비가 갠 후에는 계곡의 물 역시 이미 그 기세가 꺾이고 만다. 이 때문에 세검정은 도성 근처에 있는데도, 성 안사대부 가운데 정자가 자랑하는 빼어난 경치를 만끽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신해년(정조 15년, 1791년) 여름날, 나는 한혜보를 비롯한 여러 사람과 남부 명례방(明禮坊)1에..

우리 옛 뿌리 2019.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