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공(奉公) 제5조 공납(貢納) 3
군전(軍錢)ㆍ군포(軍布)는 경영(京營)에서 항상 독촉하는 것들이다. 거듭 징수하는가를 잘 살피고, 퇴하는 일이 없게 하여야 백성의 원망이 없을 것이다.
(軍錢軍布 京營之所恒督也 察其疊徵 禁其斥退 斯可以無怨矣)
▶봉공(奉公)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3편인 봉공(奉公)은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고 공경으로 윗사람을 섬기는 등, 공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6조로 나누어 논하였다.봉공(奉公)의 제5조인 공납(貢納)은 ‘국가의 수요품을 조달할 목적으로 각 지역에 토산물을 할당하여 현물로 거두어들이는 제도’를 말한다.
▶군전(軍錢)ㆍ군포(軍布) : 병사로 복무하는 정군(正軍)의 복무에 필요한 경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내는 돈과 포(布).
▶경영(京營) : 서울에 있던 훈련도감(訓鍊都監). 금위영(禁衛營), 어영청(御營廳), 수어청(守禦廳), 총융청(摠戎廳), 용호영(龍虎營)의 총칭(總稱).
▶퇴하는 일 : 백성이 내는 공물을 공연히 문제 삼아 퇴짜를 놓는 일.
《한암쇄화(寒巖瑣話)》에는 이렇게 말하였다.
“군포(軍布) 한 가지 일로 말하면, 첨정(簽丁)하는 법은 거칠고 어지러워서 질서가 없다. 군보(軍保)는 하나인데 군정(軍丁) 부담을 지는 자는 5~6명이나 된다. 넉넉한 민호(民戶)로서 재산이 있는 사람은 아전들이 모두 사사로이 처리하고, 오직 의지할 곳 없이 떠돌아다니는 백성들만 집행하여 상납해야 할 군포(軍布)의 액수로 충당하니 상납이 기한을 어기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자세한 것은 하편 - 병전(兵典) 첨정조(簽丁條) - 에 있다.
▶첨정(簽丁) : 병정(兵丁)을 규정하는 일을 말한다. ▶군보(軍保) : 정병(正兵)을 돕는 조정(助丁)이다. 조선조의 군제(軍制)는 원래 현역병 한 명에 대하여 조정인 봉족(奉足) 두 명씩을 두고 현역병의 농작을 대신해 주도록 하였는데, 후기에 와서는 양병(養兵)의 비용에 쓰기 위하여 조정에서 역(役)을 면해 주고 그 대가로 군포(軍布)를 바치게 하였다. 배정되는 봉족(奉足)의 수는 정군의 역종(役種)에 따라 달랐다. |
무릇 상납할 물건으로서는 돈이 가장 폐단이 없고 쌀도 쉽게 살필 수가 있지만, 면포와 마포는 올이 굵고 고운 등급이 많고 폭이 넓고 좁은 데 따라 값이 다르며, 그 길이에는 본래 척수가 있기는 하지만, 경척(京尺)ㆍ관척(官尺)ㆍ이척(吏尺)ㆍ민척(民尺) 등 모두가 다르기 때문에 아전이 농간을 부리기 쉽고 백성의 고통을 살필 수가 없다.
전에 곡산(谷山) 아전이 군포를 함부로 거두어들여, 포보포(砲保布) 1필에 돈으로 9백전 - 9냥이다. - 까지 거두어 백성의 원성이 크게 일어나 변란이 일어날 뻔하였다.
내가 이 고을에 도임하여 영을 내리기를,
“무릇 군포를 납부하는 자는 관정(官庭)에서 납입하도록 하라.”
하였다. 몇 달이 지나서 백성들이 군포를 가지고 오게 되었다. 아전이 그 자[尺]를 내놓는데, 그 양쪽 끝을 보니 분명히 낙인(烙印)이 있었다. 내가 묻기를,
“이 자[尺]는 어디서 나온 것인가?”
하니 아전이 대답하기를,
“포정사(布政司)에서 나누어 준 것입니다.”
하였다. 내가,
“허허, 왜 이렇게 긴가?”
하고, 교노(校奴) - 이른바 수복(守僕)이다. - 를 재촉해 불러 《오례의(五禮儀)》를 찾아오도록 하였다.
《오례의》에는 포백척(布帛尺)의 도면이 있어서, 이 자를 가지고 그 낙인이 있는 자와 비교해 보니, 낙인이 있는 자가 2치[寸]나 더 길었다. 이에 아전을 관정(官庭)에 엎드리게 하고 힐문하기를,
“삼군문(三軍門)의 유척(鍮尺)은 곧 《오례의》에 규정한 자다. 네 낙인 있는 자는 어디서 나온 것이냐?”
하니, 아전은 머리를 조아리며 자복하기를,
“본읍에서 만든 것입니다.”
하였다. 이에 《오례의》에 준하여 자를 만들고 이르기를,
“시노(侍奴)가 자를 잡으면 자질이 부정확하다. 마땅히 관정에 20척이 되도록 땅금을 그어 양쪽 끝에다 표를 세우고, 군포의 가운데를 접어서 그 끝을 가지런히 한다면 40척이 될 것이다. - 군문(軍門)의 법이 이렇다. - 옛날 관례로 공포(貢布)는 37척을 1필로 삼았고 시포(市布)는 40척을 1필로 삼았으니, 이제 40척으로 받으면 오히려 3척이 남는다.”
하였다. 이에 백성으로 하여금 군포를 바치게 하고 가운데를 접어서 양쪽 끝을 가지런히 해 보니 7척이 남았다. 나머지를 끊어서 백성에게 돌려주고, 40척을 군리(軍吏)에게 내어주니, 아전들도 할 말이 없고 기일대로 상납하였다.
▶포보포(砲保布) : 포군(砲軍)은 네 사람 중에 한 사람은 현역에 복무하고 세 사람은 봉족이 되어 복무하는 대신 베를 바쳤다. 이를 포보포라 한다. ▶포정사(布政司) : 여기서는 감영(監營)을 가리킨다. ▶오례의(五禮儀) : 길례(吉禮)ㆍ흉례(凶禮)ㆍ군례(軍禮)ㆍ빈례(賓禮)ㆍ가례(嘉禮) 등 다섯 가지의 예의를 중점적으로 다룬 책으로 성종 때 신숙주(申叔舟)가 왕명으로 편찬하였다. ▶삼군문(三軍門) : 훈련도감(訓鍊都監)ㆍ금위영(禁衛營)ㆍ어영청(御營廳). |
대개 수령이란 백성에게 친히 임하는 벼슬이다. 임금은 지존하여 몸소 백성에게 임하지 못하므로, 나로 하여금 그들을 다스리게 하는 것이니, 사리로는 몸소 서무(庶務)를 다루면서 백성의 고통을 살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요즈음 수령은 망녕되게도 자신이 높은 체하여 대체만을 지키기에 힘쓰고 무릇 상납하는 물건은 일체 아전들 손에 내맡겨, 온갖 침학(侵虐)이 자행되어도 귀머거리처럼 듣지 못하니, 수령의 직임이 어찌 진실로 이와 같은 것이겠는가?
완평부원군(完平府院君) 이원익(李元翼)이 안주 목사(安州牧使)가 되었는데, 그 고을의 방변군(防邊軍)이 많이 비어서 폐해가 이웃과 친족에게까지 미치고 있었다. 그는 이에 관곡(官穀)을 방출하여, 봄ㆍ여름에 곡식이 귀할 때 싼값으로 포목을 구입하여 각 진에 내야 할 군포로 충당하고, 가을 추수철에는 정규의 부세(賦稅)에 그 수량만을 덧붙여서 군포값에 충당하니, 백성에게는 부담이 중하지 않고 오래 쌓인 폐단이 드디어 없어지게 되었다.
▶방변군(防邊軍) : 변방을 방어하는 군사. |
《군포설(軍布說)》에,
“간사한 백성의 폐해는 간사한 아전의 폐해보다 더하다.”
하였고, 《시경(詩經)》 위풍(衛風) 〈맹(氓)〉에서는,
“남자의 탐닉(耽溺)은 그래도 말할 수 있으나, 여자의 탐닉은 말할 수조차 없도다.”
하였는데, 나는 이에 덧붙이기를,
“아전의 간사함은 말할 수 있으나, 백성의 간사함은 말할 수 없도다.”
하였다. 내가 오랫동안 민간에 있으면서 보니 풍헌(風憲)ㆍ 약정(約正)ㆍ 별유사(別有司)ㆍ 방주인(坊主人) 등이 문서를 고치고, 법규를 농락하여 부정을 함이 아전보다도 더 심하였다. 무릇 상납하는 물건이 그들의 손에 들어가면 태반이 없어져 밑돌이 윗돌이 되어 버리는 장난이 이뤄지니 - 여름에 납입할 물건을 봄에 납입할 물건으로 변경하기를, 담을 쌓는 자가 밑돌을 빼다 윗돌로 하는 것처럼 한다. - 마침내는 수만 전 - 수백냥 - 의 포흠(逋欠)을 지게 마련이요, 또다시 징수를 해서 온 방(坊)을 소란케 하니, 이야말로 큰 좀이 아닐 수 없다.
무릇 촌민들 중에 순박한 자는 힘써 풍헌ㆍ약정 등의 직임을 회피하고 오직 부랑하고 간사한 자들만이 아전이나 향임(鄕任)들과 결탁하여 항상 풍헌ㆍ약정 등의 직임에 있게[都] 된다. - 도(都)는 거(居)의 뜻이다. - 그러고는 물고기도 사고 닭도 사다가 권세 있는 아전에게 아첨하여 섬긴다.
만일 어떤 사건이 벌어지는 날에는 아전이나 향임(鄕任) 등은 수령의 측근에 있으므로 백방으로 주선하여 혹은,
“이 방(坊)은 본래 빈 액수가 많은 것이요, 도둑맞은 것이 아닙니다.”
하고, 혹은,
“이 사람은 본시 가난뱅이가 되어서 도로 징수할 수가 없습니다.”
한다. 현령은 그 말을 깊이 믿어서 죄를 범한 자에게는 매 한 대 치지 않고, 죄 없는 자는 재납(再納)을 면할 길이 없다. 진실로 탄식할 일이다.
▶풍헌(風憲) : 향소직(鄕所職)의 하나로서 면(面)이나 이(里)의 일을 맡아보았다. ▶약정(約正) : 향약(鄕約) 단체의 임원. 도약정(都約正)과 부약정(副約正)이 있었다. ▶별유사(別有司) : 각방(各坊)에서 호적(戶籍) 등 공공사무를 맡아보던 사역(使役)의 하나. ▶방주인(坊主人) : 군현(郡縣)과 방(坊) 사이를 왕래하던 심부름꾼. |
방주인(坊主人)이란 문졸(門卒)이 차지하는 자리이며, 문졸이란 소민(小民)의 호랑이다. 상납의 시한이 급하더라도 오직 풍헌ㆍ약정만을 엄하게 다루어 기한 안에 바치도록 할 것이지, 결코 호랑이를 민간에 풀어놓아서는 안 된다.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 다산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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