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공(奉公) 제5조 공납(貢納) 6
상사(上司)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을 군현에 강제로 배정하면 수령은 마땅히 그 이해를 차근차근히 설명하여 봉행(奉行)하지 않도록 기해야 한다.
(上司以非理之事 强配郡縣 牧宜敷陳利害 期不奉行)
▶봉공(奉公) : 『목민심서(牧民心書)』 제3편인 봉공(奉公)은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고 공경으로 윗사람을 섬기는 등, 공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6조로 나누어 논하였다. 봉공(奉公)의 제5조인 공납(貢納)은 ‘국가의 수요품을 조달할 목적으로 각 지역에 토산물을 할당하여 현물로 거두어들이는 제도’를 말한다.
▶봉행(奉行) : 시키는 대로 받들어 행함.
강제로 배정 - 이문(吏文)으로는 복정(卜定)이라고 한다. - 하는 영(令)은 거의가 따르기 어려운 것들이다. 혹은 고르지 못한 요역(徭役)으로 징수하기도 하고, 혹은 얻기 어려운 물건을 요구하기도 하고, 혹 퇴한 물건을 변조하여 파는데 헐한 것을 비싸게 받기도 하고, 혹 백성들을 동원하여 부역에 나가도록 하되 가까운 곳을 두고 먼 데로 가게 하는 등 가지가지로 이치에 맞지 않아 봉행할 수 없는 것이면, 사리를 낱낱이 보고하고 그래도 들어 주지 않으면, 비록 이것 때문에 좌천을 당하더라도 굽혀서는 안 될 것이다.
▶이문(吏文) : 중국과 주고받는 외교문서와 조선의 관청 공문서 등에 사용되던 한문 문체. |
장요(蔣瑤)가 양주지부(揚州知府)로 있을 때였다. 강빈(江彬) - 총애받는 신하이다. - 이 황제의 명이라 하며 양주의 대호(大戶)를 보고하도록 요구하니, 장요는 말하였다.
“오직 4개의 대호(大戶)가 있을 뿐이니, 첫째는 양회염운사(兩淮鹽運司)요 둘째는 양주부(揚州府)요 셋째는 양주초관(揚州鈔關)이요 넷째는 강도현(江都縣)이며, 양주 백성은 빈궁하여 별로 대호가 없소.”
강빈이 또 황제의 명이라 하며,
“조정에서 수녀(綉女)를 간선하도록 하고 있소.”
하니, 장요는,
“양주에는 겨우 세 사람의 수녀가 있소.”
하였다. 강빈이,
“어디에 있소.”
하니, 장요는,
“민간에는 전혀 없고 부내(府內)에 내 딸 셋이 있을 뿐이오. 조정에서 꼭 간선하려 하면 곧 수에 넣겠소.”
하니, 강빈은 말문이 막혀서 그 일은 드디어 정지되었다.
▶장요(蔣瑤) : 명나라 때의 관리로, 남경 어사(南京御史) 등을 거쳐 공부 상서(工部尙書)를 지냈다. ▶강빈(江彬) : 명나라 때 말을 잘 타고 활을 잘 쏘아 무종(武宗)에게 총애를 받아 도지휘첨사(都指揮僉事)가 되어 군사통수권을 쥐는 등 권세가 막강했으나 성품이 교활하고 횡포가 심하였다. ▶양회염운사(兩淮鹽運司) : 염운사(鹽運司)는 소금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 ▶양주초관(揚州鈔關) : 초관(鈔關)은 수세(收稅)하는 곳. ▶오직 …… 없다 : 강빈(江彬)이 탐재(貪財)할 목적으로 양주에 사는 민간의 대부호(大富豪)를 묻자, 장요는 이렇게 관설(官設) 기관만을 들어 그의 말문을 막았던 것. ▶수녀(綉女) : 처녀(處女). |
당간(唐侃)이 무정 지주(武定知州)로 있을 때였다. 마침 군적을 정리하여 보내야 할 수가 1만 2천 명에 이르렀다. 당간은,
“무정주의 호수가 3만이니 이는 한 주의 반수가 비게 되는 셈이다.”
하고, 힘껏 반대하여 그 일이 중지되게 되었다.
그때 여러 환관이 교노(校奴)에게 명령하여 주현을 채찍질하며 선언하기를,
“공장(供帳)을 마련하지 못하면 죽인다.”
하였다. 당간은 빈 관(棺)을 한 개 메다가 옆방에 넣어 두었다. 여러 환관들이 공갈과 위협으로 돈을 갈취하므로 같이 일하는 자들은 모두 도피하였지만, 당간만은 도망가지 않았다. 일이 급해지자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너희들과 돈 있는 곳에 같이 가서 돈을 받자.”
하면서 그들을 옆방에 인도하여 관을 가리켜 보이며,
“나는 이미 죽음을 결심하고 왔고 돈은 얻을 수 없다.”
하니,
여러 환관들이 서로 쳐다보면서 힐난하지 못하였다. 도망간 자들은 모두 죄를 입었지만, 당간만은 정표(旌表)를 받게 되었다. 그는 수령으로 간 곳마다 대부분 빈 전대로 돌아왔다.
▶당간(唐侃) : 명나라 때의 관리로 벼슬이 형부 주사(刑部主事)에 이르고, 효성이 지극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교노(校奴) : 수복(守僕)의 다른 명칭. ▶정표(旌表) : 선행(善行)을 칭찬하고 드러내어 세상에 널리 알림. |
여공저(呂公著)가 수령으로 있을 적에 전운사(轉運司)가 유향(乳香) 1만 근을 운반해 와서 군에 배정하여 팔도록 하였으나, - 백성에게 분배하여 팔아서 바치도록 하였다. - 공은 군의 창고에 집어넣어 두고 비록 공문으로 독촉이 심하였지만 끝끝내 백성에게 강제로 배정하지 않았다.
▶여공저(呂公著) : 송나라 때의 관리. |
《상산록(象山錄)》에 이렇게 말하였다.
“가경(嘉慶) 무오년 겨울에 양곡을 이미 절반 거두었는데, 상사(上司)에서 관문(關文)을 보내어 좁쌀 7천 석을 돈으로 만들어 보내도록 독촉하였다. 이 일은 본래 경사(京司)에서 왕에게 아뢰어 관문을 보낸 것이나, 내가 불가하다고 고집하고 그대로 양곡을 수납하여 창고를 봉하였다. 경사(京司)에서 나를 죄주도록 청하자, 선대왕(先大王) - 정조를 말한다. - 께서 감사의 장계를 보고는, ‘잘못은 경사(京司)에 있지, 정모(丁某)는 죄가 없다.’ 하였다. 나는 사직하고 행장을 꾸려 돌아가려다가 마침 저보(邸報)를 받아 보고는 그만두었다.”
▶무오년 : 정조 22년인 1798년. ▶상사(上司) : 여기서는 선혜청(宣惠廳)을 가리키고 당시의 선혜청 당상(宣惠廳堂上)은 문신 정민시(鄭民始)였다. ▶정모(丁某) : 정약용(丁若鏞). ▶저보(邸報) : 관보(官報). |
번역문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이정섭 역, 1986), 다산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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