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그림

김홍도의 20대 그림

從心所欲 2018. 7. 11. 21:49

 

조선 최고의 풍속화가인 단원(檀園) 김홍도가 20대 때 그린 작품으로 추정되는 풍속화 7점이 담긴 화첩이 지난

9일 처음 공개됐다. 이 화첩은 자크 모니에즈라는 프랑스 신부가 1912년 4월에 입수해 프랑스로 가져간 후,

1994년 프랑스 유명 경매업체인 타장(Tajan) 옥션에 매물로 나온 것을 국내의 독지가가 구매했다고 한다. 그간

풍속화첩을 보관·관리해온 서울 반포동 소재 AB갤러리 성석남 관장은 "익명을 원하는 소장자가 24년이 흐른

지금 공개하는 것은 우리 후손들에게 문화유산으로 남겨줄 때가 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공개 이유를 밝혔다.

화첩이 처음으로 공개되고 아직 제대로 된 검증을 거치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김홍도의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김홍도의 화풍 특징을 잘 모사한 후학의 작품일 수도 있으으로 꼼꼼이 살펴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화첩 표지, 檀園俗畵帖]

 

 

공개된 화첩은 표지에 '단원속화첩'이라고 쓰여 있다.  얇은 나무로 표지를 만든 이 화첩은 30.5cm X 28cm 크기의

그림을 반으로 접은 형태로 7점의 그림이 14면에 걸쳐 실려있다. 화첩 끝의 그림에는 '무자청화 김홍도사

(戊子淸和 金弘道寫)'라는 단관(單款)1이 있는데 전 충북도문화재위원인 이재준 박사는 “무자는 1768년,

청화는 4월을 뜻하는데 단원이 23세 때”라고 했다. 그러나 성명인이나 아호인은 따로 없고 두보의 시구인

'삼청연월화(杉淸延月華)2'라는 사구인(詞句印)3만 찍혀 있다. 이 화첩이 진첩이라면 단원이 영조 44년에

그린 작품이 250년만에 빛을 보는 셈이다.

 

[관(款)]

 

 

화첩에 실린 그림은 수하탄주도, 출행도, 동자조어도, 마상유람도, 춘절야유도, 투전도, 남녀야행도 등 7점이다.

 

[수하탄주도(樹下彈奏圖)]

 

 

[출행도(出行圖)]

 

 

[동자조어도(童子釣魚圖)]

 

 

[마상유람도(馬上遊覽圖)]

 

 

[춘절야유도(春節野遊圖)]

 

 

[투전도(鬪牋圖)]

 

 

[남녀야행도(男女夜行圖)]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진 김홍도의 풍속화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중인 '단원풍속도첩'이다. 보물 527호로 

25점의 그림이 수록되어 있다. 그동안 이 도첩은 단원이 30대 후반에 그린 것으로 추정됐을 뿐 제작 연대가

불분명한 상태다. 추정 시기가 맞다면 이번에 소개된 화첩은 우리가 보아왔던 단원의 풍속화들보다 최소 10년

전에 그린 작품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가 익숙해 있는 김홍도의 풍속화와는 느낌이 다르다. 주제를 살리기

위해 배경을 과감히 생략했던 구성이 아니다. 엷은 갈색으로 채색을 절제했던 기존의 풍속화에 비하여 색감도

다양하다. 남녀야행도의 경우는 언뜻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 분위기가 느껴진다. 선이 강하고 빠른 느낌도 없다.

소재도 서민의 일상보다는 사대부의 풍속이 더 많다. 10 여년이란 세월의 차이가 만든 차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군데군데 익살스러운 장면은 한결같다. 

 

이재준 박사는 “패턴이나 인물 묘사 방법, 음영 표현 등 도화서 화원이었던 김홍도의 품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으로 “그림에 넘쳐나는 활기와 아름다움으로 보아 단원이 한창 필력이 왕성했던 때 그린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고 분석했다. 또한 "조선후기 풍속화가 성협(成浹)4의 풍속화들과 구도와 등장인물이 똑같다.

두 사람의 작품을 비교해 보면 품격이나 붓터치 면에서 성협이 단원의 그림을 모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이제 그림이 공개되었으니 앞으로 많은 전문가들의 해설이 나올 것이다. 지금은 그림에 대해 알려진 것도 없고

그래서 보이는 것도 적겠지만 혼자 틈틈이 그림을 감상하면서 자신의 소견을 쌓아 두었다가 나중에 전문가들의

감상평과 비교해보는 것도 꽤나 흥미있고 값진 일이 될 것이다.

 

아래는 성협의 <풍속화첩>에 있는 ‘야연(野宴)’이라는 그림이다. 이번에 공개된 <단원속화첩>의 '춘절야유도'와

그대로 판박이다.

 

[성협, ‘야연(野宴)’]

 

 

가운데, 요즘의 불판 격인 고기를 굽는 둥그런 모양의 장치는 전립투(氈笠套)5이다.

그 위에 올린 고기는 무슨 고기일까? 삼겹살일까? 소고기다. 성협이 이 그림을 그리던 19세기 조선에서는 돼지고기를

구어먹는 풍습은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조선시대에는 내내 소의 도축을 엄격히 제한한 우금령(牛禁令)이 있었다.

소는 농사에 제일 첫번째로 필요한 장비이지 식용이 아니었다. 다치거나 늙어서 일할 수 없는 소만 잡을 수 있었다.

소는 설과 대보름 사이의 명절기간에 한해서만 나라에서 우금령을 풀었다. 김홍도의 그림 제목도 '춘절야유도'로

되어있다. 춘절(春節)은 음력설을 가리키던 중국식 명칭이다. 지금도 설날 즈음은 추운데 참석자들의 의복차림은

겨울에 어울리지 않게 가벼워 보인다. 성협 그림에 있는 화제(畵題)가 익살스럽기 짝이 없다.

 

술잔과 젓가락 늘어놓고 온 동네 사람 모인 자리

버섯과 고기가 정말 맛나네

늘그막의 식탐이 이쯤에서 다 풀리겠냐마는

푸줏간 앞에서 입맛만 다시는 사람 꼴은 되지 말아야지

 

 

  1. 서명과 제작일시만 기록하는 것은 단관(單款), 그림을 그린 사연을 밝히는 등의 언급이 들어가는 경우는 쌍관(雙款)이라 함 [본문으로]
  2. 김홍도가 흠모했던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 '자문(紫門)'의 한 구절 [본문으로]
  3. 좋아하는 문구를 새긴 도장 [본문으로]
  4. 19세기에 활동한 화가로 그가 그린 풍속화첩이 전하지만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본문으로]
  5. 전립투(氈笠套): 전립골 또는 벙거짓골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군복에 전립이라는 벙거지 모양의 모자를 썼는데, 전립투는 바로 이 전립의 모양을 본따서 만든 것이다. 전립투는 대개 무쇠나 곱돌로 만들며, 들기에 편리하도록 양편에는 고리모양의 손잡이가 달려 있다. 전립투를 벙거짓골이라고도 부르는 것은 그 모양이 마치 벙거지를 젖혀놓은 것과 비슷하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전립투에 전골을 끓일 때에는 가운데 오목한 부분에 육수를 붓고, 둥근 가장자리에 잘게 썰어 양념한 고기·어패류와 버섯·양파·미나리 등의 채소를 채 썰어 가지런히 놓았다가 먹기 직전에 육수에 이들 재료들을 넣고 끓인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본문으로]